형형색색 우거진 바위숲


매화산의 으뜸 봉우리가 바로 남산제일봉(1010m)이다. 왜 남산제일봉일까 생각하니 아마도 빼어나고 웅장한 가야산의 남쪽 산들 가운데 제일 가는 봉우리라는 뜻이겠다.
이처럼 사람들은 남산제일봉을 두고 가야산에 견줘서 말한다. 하지만 가야산에 견주지 않아도 매화산 또는 남산제일봉은 충분히 아름답다.
지도를 보면 남산제일봉과 매화산(954m)은 따로 표시돼 있다. 매화산은 아래 남쪽에 있으며 남산제일봉은 그 북쪽에 있다. 남산제일봉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 가운데 하나가 매화산인 셈이다.
들머리 표지판에는 매화산 또는 천불산이라고 적혀 있지만 중턱에 올라서면 매화산은 그림자도 없고 왼쪽으로 길 따라 1.2km쯤 가면 남산제일봉이 나온다는 안내만 나와 있다.
남산제일봉은 온통 바위로 이뤄져 있다.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갈 때는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멀리서 가야면 소재지에서 바라만 봐도 이미 바위가 숲처럼 우거진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불가에서는 남산제일봉을 포함한 매화산 산역을 천불산이라고 일컫는다. 자유자재로 부처님이 천이나 되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다는 것이다.
골짜기를 벗어나 마루에 올라서면 바위들이 늘어 서 있다. 오글오글한 솔 사이로 있는 것이 일천이 아니라 일만도 넘어 보인다. 어쩌면 솔 사이에 바위가 있는 게 아니라 바위 사이사이에 소나무들이 끼여 있는 듯하다.
크지도 않은 바위들이다. 하지만 바위산이라도 이른바 남성적인 기상이 드세어 보이지는 않는다. 같은 합천에 있는 황매산 모산재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모산재 바위는 엄청 크기도 하고 산 중턱에서부터 기슭으로 바짝 붙어서 쏟아져 내릴 듯한 기세다.
모산재 아래서는 사람들이 그같은 기상만으로도 질리지만 매화산 남산제일봉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 생겨날 때와 같이 삐죽삐죽 솟은 모습은 잃지 않았으되 오랜 세월에 깎여 둥그스레해져 있다. 만져도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보기에는 정인(情人)들끼리 짐짓 모른 척 돌아앉은 모습이다.
덩치도 그리 크지 않은데다 산꼭대기에서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능선에 죽 달아 있어서 알맞게 거리감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 나름인 듯, 어떤 이는 다정하게 손잡은 남녀 같이도 보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아이를 업은 어머니 같다고도 한다. 또 이른바 남근석·여근석이 아니냐고 되묻는 이도 없지 않다.
마루에 올라서서는 오른쪽으로 가면 안된다. 산을 고생시키는 이들은 막아놓은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짓쳐 들어가기도 하지만 산과 더불어 지내려는 이는 그리 험하게 대하지 않는다. 왼쪽 길을 따라서 그냥 산이 내어주는 만큼만 흙을 묻히고 바위를 오르는 것이다.
능선을 타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바위말고도 있다. 왼쪽 오른쪽 쏟아져 내리듯 뻗은 산자락을 따라 눈길을 던지면 된다.
푸르른 소나무 너머로 멀리 저수지가 보이고 얇은 안개 내려앉은 가운데 점점이 집들이 보인다. 민초정을 지나 고개 마루를 넘을 때마다 이같은 풍경이 새롭게 펼쳐지는데,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그 아름다움이 반의반도 뻗어나오지 않았다니 제 철을 맞으면 그야말로 대단하겠다 싶다.

△찾아가는길

매화산은 가야산에 가려 있다. 가야산과 해인사는 사람들로 바글거려도 매화산과 청량사는 늘 한적한 편이다.
하지만 바위산과 어울리는 나무와 숲들의 아름다움만은 어디 내놔도 남못지 않겠기에,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움을 맛보려는 이들이 잇달아 발길을 내미는 것이다.
매화산·청량사에 가려면 합천 읍내로 들어간 다음 경북 고령쪽으로 달려가다 국도 33호선과 24호선이 갈라지는 데서 해인사 표지판 따라 왼쪽 24호선을 골라잡으면 된다.
잇달아 가다가 묘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든 다음 경찰이 검문은 하는 해인사 들머리로 머리를 집어넣고 가다가 가야면 소재지가 되는 청량동에서 왼쪽콘크리트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지금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인데 굴착기 사이를 피해가다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난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립공원 매표소가 나온다. 여기 자동차를 세우고 10분 남짓 올라가면 청량사가 딱 나타난다.
합천에 가려면 진주에서는 대의고개 못미처 왼쪽으로 튼 다음 줄곧 달리면 된다. 마산이나 창원에서는 의령 대의고개를 거쳐 오른쪽으로 꺾어서 길따라 가도 되고 아니면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창녕 나들목에서 내려 오른쪽 길을 타고 합천까지 갈 수도 있다.
합천은 경남의 가장 북쪽인지라 대중 교통이 조금은 불편하다. 게다가 청량사와 매화산은 합천에서도 가장 북쪽이어서 합천읍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씩이나 더 가야 한다. 차편은 8시 10분을 첫차로 해서 80분이나 90분 간격으로 저녁 7시 10분까지 이어진다.
마산에서는 어떻게 가야 하나. 아침 7시가 첫차고 두 번째가 10시 25분이다. 이런 식으로 두세 시간마다 한 대씩 저녁 6시 20분까지 있으니 진주로 가서 갈아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 10분까지 20~30분마다 한 대씩 떠나 50분이면 가 닿으니까 말이다.

△가볼만한 곳-매화산 청량사

매화산 등산의 기점에 청량사라는 절간이 있다. 마치 황매산 모산재 아래 영암사터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모산재와 매화산의 분위기가 다르듯이 영암사터와 청량사도 사뭇 다르다.
영암사터는 폐사지면서도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리는 듯 부산스럽다. 반면 청량사는 새로 지은 들머리 집이 지나치게 우람한데도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아마 자리를 내어준 산이 뿜는 맛과 냄새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청량사 대웅전에는 잘 생긴 돌부처가 앉아 있다. 소견이 좁은 탓에 잘 보지 못했는데, 좌대까지 돌로 삼아 사천왕인지 사부 대중인지까지를 새겨 놓으니 그야말로 본존불 같다. 몸집도 통통하고 고개를 반듯하게 든 품이 아주 당당해 보인다.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웅장해 부처를 위해 대웅전이 있는지 아니면 대웅전을 위해 부처가 있는지 구분이 안되는데 여는 절간에 견주면 청량사의 부처와 대웅전은 주객이 딱 맞게 돼 있다.
하지만 더욱 멋진 것은 석등과 석탑이다. 800년대에 만든 것이라는데, 돌탑은 균형을 맞춰 잘 올렸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 석탑 치고는 좀 작은 편이다. 이를테면 다보탑과 석가탑은 물론 창녕 술정리나 산청 단속사터 삼층석탑보다 아주 나지막한 것이다.
같은 울타리에 있는 석등은 갖은 무늬를 새겨 한껏 멋을 부렸다. 석등이 멋을 부리면 사자 따위가 받치고 있는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이 석등은 받침에서부터 등이 있는 데까지 오밀조밀 조각을 새겨 놓은 게 재미있다.
어떤 부부는 석탑·석등과 멀리 바위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어떤 남매는 쪼그리고 앉아 석등 무늬를 그리는 게 정겹다. 아래쪽 남새밭에는 한 스님이 지게 지고 슬금슬금 걸어나오고, 남산제일봉에 올라 바위빛 솔향 잔뜩 묻힌 산꾼들은 절집 마당 샘에서 목을 축이는 게 그림 같다.
자칫 잘못하면 대웅전 부처님도 축대 아래 여의주를 문 돌사자 거느리고 바깥나들이를 할까말까 망설이지나 않으실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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