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이다. 너댓새만 지나면 수능점수가 나온다. 집집마다 아이 앉히고 학교 고르느라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무조건 서울로 간단다. 어디 대학이 똥통 같은 데가 있겠느냐만, 똥통 같은 대학이라도 서울을 가겠다고 야단이다. 학부모들까지도 굳이 서울서 살아야 사람 구실한다고 믿는 이도 더러는 있는 것 같다.

서울. 사람들은 왜 그리 서울만 찾는 것일까. 과거 어느 때보다 인터넷이 있어서 서울이 아니라 뉴욕이나 파리도 몇 초면 코 앞에 불러내어 접속이 가능한데.

이제 곧 고속철이 개통되면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게 되는데 굳이 서울로 몰리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미래상과는 어긋나는 것이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멀리 떨어져서 서울을 보면 서울은 하나로 느껴지고 하나로 보인다. 서울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생각과 시야에 들어 나는 성급히 서울을 휘저어 다니며 고삐 풀린 나의 온갖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 들어서면 그 것 또한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을….

서울은 마치 신기루와 같아서 지금껏 나를 잡고 있던, 나를 억누르기만 했다고 느껴지는 상징적인 나의 아버지와 잠시도 나에게 눈을 떼지 않았던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의 꿈의 장소로 보일 수 있다.

서울을 나의 미래, 나의 새 삶을 설계할 곳이 아니라, 욕망을 억누르며 지나온 모든 것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집이, 내 고향이 나를 억눌러 온 것으로 그렇게 여겨, 이제 그것을 탈출하고자 내 모든 것을 서울에다 목매다는 그런 곳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서울이 우리의 꿈을 키워주지 않는다. 서울은 혼란과 욕망이 뒤범벅 되어 들끓는 용광로 같은 도시다. 서울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메가톤급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은 “억 억”하고 나뒹군다.

어느 날은 미국서 돌아온 가수 소동에 아이들이 떼밀려 입원을 하고, 어느 날은 벗은 여자 이야기가 장안에 파다하게 입살에 오른다.

또 다른 어느 날은 뇌물 먹은 정치가가 얼굴도 안 붉히고 양로원 노친네들한테 눈물을 그렁이며 코미디언 뺨치는 쇼를 벌인다고 야단이다. 서울은 이런저런 난장판 같다.

자신의 미래도 생각지 않고 오로지 서울에 있는, 위치한 대학이라는 사실만으로 서울을 생각하는 맹목적 서울지향은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서울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현실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환상일 뿐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언제나 한 점으로 느껴지는 서울은 우리의 어떤 욕망의 탈출구도 아니다. 서울은 계속될 새 삶의 장소일 때 의미가 있다.

서울은 현실이며 나의 미래와 진정한 관계로 맺어질 때만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어쩌면 현실적인 우리의 서울은 잘못된 정책으로 흥성거리는 비대한 도시여서 언젠가 공동화되어 갈 시한폭탄과 같은 난장(亂場)의 혼란한 공간으로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독일 시인 칼 붓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산너머 저쪽 하늘 / 멀리 행복이 있다고 / 말들 하건만, // 아, 남 따라 행복을 / 찾아 갔다가 / 눈물만 머금고 / 돌아왔네 // 산너머 저쪽 하늘 저 / 멀리 행복이 있다고 / 말들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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