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무지는 부하 자객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꾸했다.

“계하까지 나오시면 다행이지만, 정전에서 배알해도 괜찮다. 다만 너희들은 궐내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내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거든 달려나와, 왕을 가차없이 베어버려라!”

공손무지 일행은 역시 얼마 가지 못해 궁궐 수비군사들을 만났다.

“서랏! 누구냐!”

횃불이 확 밝아졌다.

“보면 모르겠느냐.”



“앗, 공손공자님이시다. 자정이 넘었는데, 어쩐 일이십니까?”

“대왕께 급히 아뢸 일이 있어 달려 오는 길이다. 당직무사가 누구냐. 가서 내가 왔다고 아뢰어라.”

“하오나 아무리 대왕의 아우라도 무기를 소지하고 궁중 출입은 할 수 없습니다. 수문장이 이대로 통과시켰을 리가 없는데요?”

“남쪽 국경에 변란이 일어났다기에 하도 다급해 그냥 입궁하였다. 별다른 뜻은 없으니 어서 대왕께 잠시 기침하시라 여쭙기나 해라!”

당직무사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정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왕 양공이 혼자 하품을 하면서 걸어나왔다.

공손무지는 어둠 속에서 낮게 외쳤다.

“왕과의 대화는 필요없다. 가까이 오거든 그냥 베어버려라. 곁의 시종도 없으니 마침 잘 됐다!”

제왕은 멋모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공손무지는 대꾸도 않고 날렵하게 칼을 빼어서는 제왕의 목을 쳤다.

그 순간부터 공손무지는 제나라의 왕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도망을 쳐야 되겠습니다. 공손무지는 무자비하게 부왕을 살해한 뒤 규 공자까지도 처형하겠다며 곧 군사를 보내온다는 소문입니다!”

관중의 말에 규 공자는 대꾸도 못하고 얼굴부터 파랗게 질렸다.

“갑자기 어디로 도망친다는 말이오!”

“저만 따라 오십시오. 이웃 노(魯)나라 쪽으로 피신할까 합니다.”

한편 소백공자와 포숙아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포숙아는 소백을 달랬다.

“일단 피신하는 게 상책일 것입니다. 서둘러서 제나라를 벗어나야지요.”

“글쎄, 어디로 몸을 숨기는 게 좋겠소?”

“이웃 거나라가 가장 안전할까 합니다.”

“안전을 제일로 친다면 좀 더 먼나라로 도망치는 게 옳지 않겠소?”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왕을 시해한 공손무지의 앞날도 그리 밝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무슨 뜻이오?”

“공손무지가 선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다지만 권력구조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지를 못한데다 선왕의 신하들이 그를 살려둘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이웃나라로 피신하자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공손무지가 죽는 즉시 공자께서 귀국하셔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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