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날 에워싸고 바람처럼 살라하네…


달이 떠오르는 모양을 한 산이라는 월아산(月牙山·471m). 진주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산이다.
월아산에서 바라보는 달맞이는 아주 빼어나서 진주 12경에 들어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오를 때마다 월출의 아름다움을 맛보겠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보름이 채 안된 요즘 같은 때는 해가 지기도 전에 낮달이 뜨니까 아예 안되고 보름에 맞춘다 해도 구름이 끼면 또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오히려 다른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아 산행을 하는 게 실속은 더 있을 것이다.
월아산에 오르면서 늘 하나 같이 느껴지는 것은 숲이 잘 가꿔졌다는 것이다. 굴피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등 활엽수가 우거져 있으며 조금 더 올라가면 잘 뻗은 소나무가 또 다시 기다리고 있다.
등산길은 이렇게 잘 자란 숲 사이로 나 있다. 좁지도 않다. 대여섯 사람이 한꺼번에 오르내릴 수 있을 만큼 너른 길이다. 널따랗기도 하고 안내표지판도 제대로 갖춰져 있는 편이다. 높은 산이나 깊은 골짜기에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면 그저 조그만 야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값어치를 깎아내릴 수도 있겠다.
오후 햇살이 숲으로 스며들면서 짙은 그늘이 마련된다. 나무 잎사귀에 걸리지 않은 햇살은 땅바닥까지 얼룩을 만들며 내리꽂힌다.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아닌데, 더위가 좀 누그러져서 그런지 덥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다. 몸에서 땀이 흘러나오는 만큼 그늘 아래서 그대로 식어버리는 것이다.
이리저리 나 있는 산길은 거의 가파르지 않다. 들머리가 조금 가파르기는 하지만 이내 평탄해지고 만다. 잠시 오르다가 왼쪽으로 꺾어져서 다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한 번 몸을 비틀며 조금 가팔라진다 싶으면 바로 산마루가 나타난다.
장군대봉(482m)이다. 장군대봉은 월아산의 남쪽 봉우리다. 북쪽은 문산·금산이고 남쪽은 진성·반성이다. 산과 강과 들판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들어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여기서 풍경을 즐긴 다음 조금 아래 있는 숲 속 그늘 자리에 앉아 일행들과 함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알맞게 가꿔놓은 숲 사이로 갈래갈래 난 길들은 군데군데 나무의자와 평상들을 거느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 왼쪽으로 길 따라 20분 정도 죽 가면 돌탑이 몇 무더기 쌓여 있는 언덕바지에 이른다. 여기 갈림길에서 북쪽 월아산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청곡사나 성은암쪽으로 길을 골라잡아 내려가기 시작한다. 장군대봉에서부터 줄곧 내리막길이었으므로, 여기서 다시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 건너편으로 기어오르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다.
성은암은 산의 한가운데 중턱쯤에 있는 기도도량이다. 절집 한쪽 구석에 차가 없는 걸 보니 지금 이 순간만은 텅 비어 있는 모양이다. 풍경 소리도 잦아들었는지 들리지 않는데 절집은 희한하게도 여염집 분위기가 물씬하다.
마루 한쪽에 걸터앉아 바라보니 앞쪽에 버텨선 느티나무 너머 서쪽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노을 아래엔 바다가 몸을 풀었고, 고개를 앞으로 조금 당기면 벼 때문에 푸르기도 하고 비닐 때문에 허옇기도 한 들판이 출렁대고 있다.
여기서 내려가면 조그만 연못을 하나 만날 수 있다. 청곡사 골짜기를 타고 내린 물은 모두 여기로 일단 모이나 보다. 못가에 앉아 물에서 노니는 오리랑 붕어들에게 잠시 눈길을 던지고 올 수도 있다.


△가볼만한 곳 - 청곡사

월아산 산행의 기점은 청곡사다. 청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크지는 않은 절이다. 하지만 오래된 절답게 하나하나 뜯어보면 재미있는 게 많다.
먼저 한가운데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 새로 지었다고 한다. 전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적혀 있지만 새 표지판에는 쏙 빠져 있고 대신 일제시대 때 왜식이 가미됐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느 대웅전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수더분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고려시대 3층 석탑이 있다. 보통 돌탑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대웅전 앞에 버티고 있기 십상인데 이 돌탑은 나한전·칠성각 옆에서 1000년 가까이 습기와 싸우고 있는 듯 모습은 아주 단정하다. 아마 대웅전 말고 부속 전각 앞에 놓였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대웅전에 잇닿아 있는 업경전은 지장보살을 모셔 놓았는데, 사자(死者)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라 할만하다. 문을 열면 양쪽 인상이 부리부리한 사천왕 비슷한 인물이 지키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열 명의 왕을 모셔놓았다. 울긋불긋한 단청과 지붕 짜임새도 볼만하다.
아이들과 함께 나한전이나 칠성각 바깥벽에 그려 놓은 불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소를 쉬게 하고 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쟁기를 끄는 장면도 있고 삼매에 빠진 수월대사가 사슴 토끼 호랑이와 함께 있는 장면도 나온다.
아이들은 이런 그림을 보고 묻기도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른들도 자신이 잘 모르는 사건이나 경전에 매이지 말고 그냥 느낌대로 얘기를 주고받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웅전 왼편에는 선불장이 있다. 맞은 편에 종무소가 있는 것으로 미뤄 보건대 스님이나 신도들의 숙소인 듯한데 여기에는 기둥이 잘려 있는 사연을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다.
19세기 말 청곡사가 빈 절이었을 때 진주 부자 강 아무개가 절간 기둥이 탐이 나 잘라서 제 집을 지었다가 얼마 안가 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청곡사 지장보살의 노여움을 받아 그리 됐다고 말하면서 새로 기둥을 끼워 선불장을 세웠다는 것이다.
사연도 그리 재미없지는 않지만 굳이 건물 기둥마다 코팅까지 해서 붙여놓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마 불심을 더욱 두텁게 하기 위해서지 불전을 더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찾아가는 길

월아산은 진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 진주서는 교통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마산서도 별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문산·동진주 나들목에서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다. 통행료를 내고 나면 곧바로 신호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한가운데 금산·공군교육사령부로 난 길이 청곡사로 이어진다.
이 길로 접어들어 조금 가게 되면 오른쪽으로 청곡사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지판을 따라 가면 청곡사 앞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장군대봉이 아니라 북쪽 월아산에 굳이 올라가려면 청곡사 가는 길을 알리는 첫 표지판을 따라가 산고개를 자동차를 타고 넘은 다음 월아마을을 거쳐 월정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이 고갯마루를 사람들은 질매재라고 하는 모양인데 여기 차를 세워두고 왼쪽으로 기어오르면 월아산에 가 닿을 수 있다. 물론 오른쪽 기슭으로 달라붙으면 장군대봉으로 가게 된다.
한편으로는 남해고속도로 진성 들머리에서 빠진 다음 진성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다음 곧바로 왼쪽으로 꺾어들어 질매재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까 월아산 가는 길이 마산쪽에서는 적어도 두 개가 되는 셈이다.
진주에서는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50번은 진주역을 지나고 70-2번은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난다. 70-2번은 진양호를 기점으로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9시 45분까지, 50번은 아침 6시 55분부터 저녁 10시 10분까지 하루 14편이 다닌다. 배차 간격은 40~55분이다.
그러니까 마산·창원에서는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진주에 가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