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넋 실어 시 한수 읊을까


숲이 나지막해서 아늑하고 포근하다. 소나무처럼 위로 치솟는 대신 아름드리 밑둥치를 드러내고는 알맞게 옆으로 퍼졌다. 느티나무 때죽나무 복자기 사람주나무 갈참나무 꼭지윤노리나무에다 대팻집나무 가람주나무까지, 눈에 익은 나무도 있지만 처음인 놈도 없지 않다.
향기도 남다르다. 숲에 들어가니 그윽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조금 비린 듯도 한, 밤꽃 비슷한 냄새도 느껴진다. 이파리 넓적한 활엽수로 이뤄진 숲이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흐르는 진액도 송진처럼 벌레 쫓는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풍뎅이 같은 곤충이 꾀도록 하는 달콤한 냄새를 뿌린다. 나무는 이들을 위해 곳곳에 구멍을 내어준다.
흙은 부드럽고 깨끗하다. 숲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겨도 마찬가지다. 낙엽도 수북하게 쌓였고 한창 피서철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냄새는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앞서 떨어진 도토리를 주우려는지 다람쥐가 한번씩 달리기도 하고 평생 집을 이고 사는 달팽이가 꾸무럭거릴 뿐이다.
상림은 숲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6만3000평 너른 숲을 거닐면 숲이 함양의 역사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창후 최치원 신도비가 있고 1919년 함양 장날에 일으킨 3·28 독립만세 기념비도 있다. 병인양요가 일어난 해에 만들어 신미양요가 터진 해에 세웠다는 척화비도 있고 손목 아래가 떨어지고 허리가 부러진 고려시대 돌부처도 한 쪽에 모셨다.
숲 자체가 신라 대문장가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만든 것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읍내를 가로질러 해마다 넘치는 강줄기를 옆으로 빼돌리기 위해 흙과 돌을 쌓고 나무를 심어 대관림을 만들었는데, 중림·하림은 사라지고 상림만 남았다는 것이다.
숲 바깥에는 위천이 당당하게 흐른다. 늦장마로 불어난 물이 갈대를 휩쓴 자국이 뚜렷하다. ‘우웅’ 멀리서 바람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웅장하게 흐른다. 강폭이 넓은 것은 아니다. 물이 빠지면 아마 냇가에는 앉아서 놀만한 자리가 여럿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숲 안에는 너비 2m 남짓 개울이 흐른다. 숲 전체에 물기를 대어 주는 실핏줄 노릇을 하는 셈인데, 최치원이 대관림을 만들 때 일부러 공역을 들여 쌓은 것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남았다.
숲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시간 남짓 걸린다. 성질 급한 사람은 2시간만으로도 충분하겠다. 하지만 서두를 것이 무어 있는가. 한참 거닐다 보면 팍팍해져 있던 어깨가 슬그머니 풀리는데, 기분 좋은 피로감이 살금살금 스며드는데.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날뛰지 않아도 일상의 되풀이가 안겨다 주는 온갖 고달픔을 쉽게 풀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함양 가는 길은 통영~대전 고속도로 덕분에 무척 가까워졌다. 진주는 물론 창원·마산에서 가다가 고속도로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길 따라 가다가 함양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표지판 따라 꺾은 다음 4km 남짓 그대로 달리다 보면 함양읍내다.
자가용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손쉽게 갈 수 있다. 조금만 미리 챙긴다면 훨씬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055-256-1621)은 아침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10분까지 시간마다 평균 3대씩이고 11시부터 2시 사이는 1대밖에 없으니 차편이 안좋은 셈이다. 대신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5분마다 있으므로 진주에 가서 갈아타면 되겠다.
시간을 내어서 군청과 초등학교를 비롯해 읍내를 한 바퀴 둘러보면 더욱 좋다. 여느 곳과 달리 잘 자란 나무들을 그대로 살려 둬서 보기가 아주 좋고 느낌도 시원하다. 500년 된 천연기념물 나무도 있고 군청 앞 학사루도 한 이름 하는 명물이다.
아니면 읍내 여관에 방을 잡고 이틀쯤 묵어도 되겠다. 안의 허삼둘 가옥이나 수동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을 비롯해 남계·청계서원 등을 둘러볼 수도 있겠고, 안의 화림동계곡과 용추계곡에서 한철 물놀이를 즐기는 것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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