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되는 포숙아(鮑叔牙)는 하인의 얼굴을 덤덤한 눈으로 건너다 보았다.

“네 태도를 보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같은데, 그래 대체 무슨 용무냐?”

“관중(管仲) 어르신과는 어떤 사이이신가 하고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그분은 내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가 아니더냐. 더구나 지금은 나와 동업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들은 가슴이 아픕니다.”

“무슨 소리냐?”

“막역지우이면서 동업자끼리는 속여도 되는 것입니까?”

“그분이 날 속이기라도 했다는 얘긴가?”

“그러문요. 이 장부 좀 들여다 보십시오. 셈을 속여도 예사 속이신 게 아닙니다!”

하인은 죽간을 들썩이며 포숙아의 코밑으로 들이밀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손으로 그것을 밀어내었다.

“아서라. 그만 두어라.”

“예에?”

“그분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마음이 나빠서 날 속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이 가난해서이다. 나보다 더 그분의 가정 형편을 잘 아는 사람이 천하에는 없다. 그러니 모른 척 덮어두어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부자이고 그분은 가난하지 않느냐. 병든 노모도 계시고.”

그 이후로도 관중은 끊임없이 포숙아를 속이고 있었지만, 포숙아는 이를 알고서도 시종일관 시치미를 뗐다.

몇 년이 흐른 뒤였다. 두 친구는 동시에 관직에 발탁되었으므로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두 친구는 불행히도 정치적으로는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포숙아는 제(齊)나라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섬기는데다, 관중은 소백의 이복형인 규(糾)를 섬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공자의 싸움은 치열했다. 부친인 양공(襄公)이 서거하게 되면 자신이 왕위에 오르겠다는 야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왕인 양공에게 공손무지라는 동생이 있었다.

“무어, 규와 소백이 왕위를 노려 치열하게 싸운다고? 두 놈 모두 어림없다! 차제에 왕을 죽인 후 내가 왕위에 오른 뒤 두 공자놈들도 처치해 버려야겠다!”

그런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줄을 규나 소백 역시 알 까닭이 없었다.

공손무지의 계책은 단순명쾌했다. 반역에 가담할 자객들을 모은 뒤, 밤중을 택하여 왕궁의 담을 넘었다.

“궁궐 수비군사가 있더라도 놀라지들 말게. 대왕께선 내가 지극한 심복인 줄 알고 계시니까. 그러니까 국경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긴급 보고를 드리러 왔노라고 말할테니 그리들 알도록.”

“대왕을 해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부하 자객 하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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