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물결 새침한 모래알

“어이, 배낭에 호미도 두엇 챙기라구, 없음 모종삽이라도 씻어 넣고!”
해수욕장 간다면서 이렇게 주문하면 모르는 이들은 아마 제 정신으로 하는 얘긴지 의심스러워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남해의 월포·두곡해수욕장을 한 번 다녀 온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채고 두 개 아니라 세 개 네 개를 챙길지도 모른다.
월포·두곡 해수욕장에서는 들끓는 사람들에 치이지 않고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며 여러 가지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월포마을에서 두곡마을로 가면서 볼 때, 처음에는 갯벌이 펼쳐지고 이어서 모래사장이 나타났다가 조금 풍성하다 싶으면 몽돌로 바뀐다.
몽돌이 개울을 지나 두곡으로 건너가면 모래밭이 잠깐 다시 나타났다가 바로 갯바위로 이어져 나간다. 그러고 나서 앙증맞도록 조그맣고 동그란 바닷가가 시침떼듯 웅크린 채 한 걸음 떨어져 사람을 맞이한다. 준비한 호미는 바로 갯벌에서 쓴다. 사람들은 수건을 뒤집어쓴 채 열심히 호미질이다. 조개를 캐는 것이다. 어떤 이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수북하게 잡았다. 시커먼 개흙을 잔뜩 묻힌 손에 손가락 두세 마디만한 조개가 자꾸 끌려나온다.
이러니 900m에 이르는 해안이 아기자기할 수밖에. 축대 위로는 나지막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어서 언제든지 다리를 뻗고 쉴 수 있겠다.
어떤 남녀들은 모래밭에서 서로 쫓아다니고 딸아이 사진 찍어주느라 바쁜 아버지들도 여럿이다. 몽돌밭에서는 한 중년 여인이 모자와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통째 가리고 긴팔옷과 바지를 입은 채 배 위에 따끈따끈한 몽돌 여남은 개를 올려놓고 누워 있다. 갯바위 쪽에서는 낚시질을 하기도 하는데 바위로 둘러 싸여 고인 물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 모여 물장구치기에 딱 알맞다. 멀리는 물줄기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터보트가 시원하다.
숨은 해수욕장을 찾는 재미에 더해 이처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데가 월포·두곡이라면 사촌해수욕장은 모래밭의 담백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남해라면 상주나 송정 해수욕장만 떠올린다. 쫙 깔린 모래가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우거진 수풀도 해안 따라 뻗어 있어 편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촌(沙村)은 크기만 작다뿐이지 상주·송정 못지 않은 모래와 물결을 자랑한다. 오히려 잔잔하기는 더해서 아이들 데리고 식구들끼리 어울려 지내기에는 딱 맞겠다 싶은 곳이다. 차르르 철썩, 모래를 핥고 때리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솔밭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다만 놀기 좋게 매어 놓은 그네가 없어서 수평선이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기는 하겠다.
하지만 붐비는 상주에서 어느 천년에 그네를 얻어타겠는가 생각하면 답은 빤하다.
바다의 모래는 축대를 넘어 솔밭까지 뻗쳐 있다. 아이들은 고무튜브를 옆에 낀 채 달음박질을 하고 어른들은 천막 앞에 나앉아 하릴없이 입에 웃음을 머금는다. 사람들이 꾀지 않으니 짜증도 그만큼 덜하다.
월포·두곡은 남해대교를 지나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다 이동면에서 용문사 쪽으로 가면 나온다. 여기서 사촌은 호랑이가 묵었다는 숙호마을을 지나 남면 해안도로에서 눈을 시리게 하면서 줄곧 달려가면 왼쪽으로 들머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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