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해학이 있습니다. 어느 황제가 스승 후보 고승 10명의 색욕 유무를 시험해보고자 그들을 발가벗긴 뒤, 역시 발가벗긴 궁중 미녀 10명으로 하여금 빙 둘러싸게 했습니다. 그리한 다음 고승들 배꼽 밑에다 북을 하나씩 매달아 주고는 미녀들에게 교태 어린 가무를 하도록 명했습니다. 그 순간 발기물들이 치는 북이 둥둥둥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실망을 한 황제가 자세히 보니 한 고승의 북은 조용했습니다. 감격한 황제가 그 고승에게 다가가 북을 떼어 보았더니, 그 북은 이미 다른 북보다도 먼저 뻥 뚫려 있었습니다.

이 해학에 대입을 해보면, 6년 전 ‘소쩍새마을’의 성추행 땡추나, 4년 전 성추문 땡추(<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갖고 가지>의 저자)나 모두 ‘둥둥둥’ 소리깨나 요란했을 추물들입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집-‘나눔의 집’ 혜진 스님의 파계북도 이미 4년 전에 뚫려 있었다니 기찰 일입니다.

 

석지명 스님 글 <환희불>
그 글 속 솔직한 고백
우물가에서 옷 벗다가
곧추선 성기 들킨 얘기
그 번뇌
‘佛性 섹스’로 초탈한
대덕을 아는가 땡추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