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여는 가신들을 더욱 큰소리로 꾸짖었다.

“내가 염파를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수는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야.”

“아아, 주인님!”

가신들은 그순간 모두가 감복해 인상여 앞에 엎드렸다.

“불초한 저희들로서는 당신께서 그토록 높으신 뜻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얼마 있지 않아 염파도 그 말을 전해들었다.

등에다 가시회초리를 잔뜩 졌다. 인상여의 집 문전에 이르러서는 웃통을 벗은 뒤 사죄말을 올렸다.

“때려 주십시오! 비천한 저로서는 상경의 가슴 속에 그토록 깊은 뜻이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몹시 꾸짖어 주십시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일어나 안으로 드시지요. 저희 두 사람의 우의가 두터운 한 조나라는 안심입니다.”

“우의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부디 문경지교(刎頸之交:대신 목이 잘려도 회피하지 않을 정도의 막역한 사이)이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염파는 문경지교를 나누던 인상여가 죽고나자 정쟁에 휘말려 위나라로 도망쳤다.

조나라에서는 다른 인물들을 장군으로 기용해 봤으나 진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아니되겠다. 염파의 근황이 어떠한 지 누군가 가서 알아보고 오너라.”

조왕은 사자를 위나라로 보냈다. 염파는 조나라 사자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엿보러 왔는지 재빨리 눈치챘다.

그래서 짐짓 한 끼 식사 때 한 말의 쌀밥과 열근의 고기를 먹어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고는 맹렬하게 말을 달려 보였다.

‘아직도 염파는 건재하구나!’

사자는 돌아와 왕께 그대로 보고했다.

“비록 몸은 늙었으나 식욕은 왕성했고, 비호같이 말을 타고 다닙디다!”

염파와 원수같이 지내던 곽개라는 자가 있었는데, 염파가 다시 등용될 경우 자신의 입지가 예사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자가 떠나기 직전 많은 황금을 쥐어주며, 돌아와서는 염파를 험담하도록 당부했었다.

바로 그 순간 사자는 자신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시해 보인 일에 불과했습니다. 저와 함께 앉아 있던 잠깐 사이에 세 번이나 측간을 다녀왔으니까요.”

“결국은 망령이 들었다는 얘긴가?”

조왕은 염파를 부를 것을 포기했다.

초나라에서도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초청했다. 잠깐 초나라 장군에 임명되었지만 의욕도 없었고, 의욕이 없으니 공로 세울 일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조나라에 대한 미련 뿐이었는지, 항상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오직 조나라 군사를 부려보고 싶다!”

염파는 더 이상 쓰이지 못한 채, 끝내 수춘에서 죽었다.

(출전 : <史記>, <十八史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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