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통영현대음악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특히 3일간의 음악제동안에 열린 각종 연주회와 강연·세미나 및 워크숍은 지역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이었다. 특히 현대음악작품을 섬세하게 분석하고 해설한 오케스트라 워크숍은 인상적이었다.

통영현대음악제에서 열린 각종 강연이나 세미나·워크숍의 큰 주제는 대략 3가지 정도.

우선 지난해 행사가 전체적으로 윤이상의 삶과 예술, 작곡기법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음악제의 세미나나 강연은 공동기획자인 한국여성작곡가회가 주최하는 음악과 여성에 관련된 내용과 윤이상음악에 대한 분석 등이 적절히 분배됐다. 마지막으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성향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주제별로 주요내용을 살펴본다.

▲음악과 여성 = 17일 오전 10시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강연과 토론으로 벌어진 세미나 ‘음악과 여성’. 기조발제와 강연의 주된 내용은 창작계에서 페미니즘(남녀 동등권주의) 논쟁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김혜자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은 기조발제를 통해 예술창작에서 여성들은 여성성을 강조하기 보다 이를 극복하고 있으며, 실제로 20세기에 들어 여성작곡가들의 활동이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음악창작에 관한 한, 특히 작곡기법에서 여성의 것과 남성의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는 만큼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이 남성작곡가들의 어법을 흉내내고 있다는 등의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김희정(작곡갇상명대학교 음악학부교수)씨는 ‘창작음악과 여성-진단과 개선방안’이란 강연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음악에 있어서 페미니즘을 분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는 여성음악가의 사회적 조건을 제약하는 요인을 교육내용, 사회적 인식과 승인, 시간적·육체적 자유로부터의 장애 등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예술인시상과 여성예술가상 개발, 예비 여성작곡가에 대한 지원, 온라인을 통한 네트워크 활용과 경영개념 도입, 여성작곡가 협회의 활성화를 들었다.

또 인적자원 활용의 기초가 되는 통계자료 확립, 성차별 임용방지를 위한 제도정비 등 사회적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여성작곡가들의 단결과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결정에 대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여성작곡가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언행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이상의 음악 -<교향곡 4번〉을 중심으로 = 17일 소극장에서 세미나 2부 행사로 마련된 윤이상 음악에 대한 분석, 특히 ‘교향곡 4번-암흑 속에서 노래하다’를 두고 음악전문가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뜨거웠다.

음악학자인 발터-볼프강 슈파러(국제윤이상협회 회장) 씨는 〈교향곡 4번〉이 1악장에서 불균형한 주기로 낭송조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시조낭송을 본뜬 것이라고 밝혔다.

슈파러씨는 2악장에서 오보에의 노래가 차분하고 단호한 억양으로 대체되는 등 전통적인 서양의 화성구성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한국적인 것이 〈교향곡 4번〉의 중심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음악적 성향은 윤이상의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선 크리스티안 우츠(음악학자·현재 일본에서 아시아음악 연구)는 윤이상의 음악은 매력적인 요소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결국 전통적인 유럽 교향곡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그는 ‘〈교향곡 4번〉의 경우 1986년 베를린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시간적으로도 아시아적인 감성을 유지하면서 쓴 작품이 아니며, 윤이상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윤이상의 음악에서 아시아와 유럽적인 성향을 동시에 찾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여 슈파러의 주장을 뒤집었다.

이에 대해 슈파러는 윤이상의 작품은 ‘새로운 그릇에 오래된 내용을 담았지만 또 다른 신선한 해석이 덧붙여졌고, 특히 〈교향곡 4번〉의 경우 음악자체에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담았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들의 논쟁은 방청객의 질문으로 이어지고, 영어로 진행되던 세미나가 독일어로 바뀌는 등 끝까지 뜨겁게 진행됐다.

▲오케스트라 워크숍 = 고전·현대음악에 대한 섬세한 해석 = 통영현대음악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획은 단연 오케스트라 워크숍이었다.

뮌헨 음대와 부다페스트에서 지휘를 전공한 욥스트 리브레히트(지휘자·함부르크 출생)가 바흐·안톤 베베른의 곡 〈푸가-6성 리체르카타〉, 박영란(작곡갇서울 출생)의 현악합주를 위한 〈활개치는 대나무들〉, 이자벨 문드리(작곡갇서베를린 출생)의 〈워즈 I-말〉 〈날리는 모럿를 오케스트라 워크숍으로 2시간 여동안 진행했다.

각각의 작품마다 전체적인 곡해석은 물론이고 한 음절음절마다 적용된 악기 하나하나의 음을 들려주면서 적용된 음악기법까지 설명해 나갔다. 특히 악기의 리듬을 관객들에게 연습시키고 여러 부분으로 나눈 관객의 박수소리로 연주해내면서 관객이 곡을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평소 클래식을 어렵게 생각하는 관객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고, 특히 클래식애청자들도 해석하기 쉽지 않은 현대음악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내는 기획은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이자벨 문드리의 〈날리는 모럿를 해석할 때 오케스트라의 일부가 무대에서 객석으로 자리를 옮겨 연주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오케스트라 워크숍은 작품에 대한 단순한 해설차원을 넘어선 관객과 함께 하는 연출력으로 통영현대음악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공연이란 평을 들었다.

/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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