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대장군 염파(廉頗)가 발끈했다. 자신의 직위보다 인상여가 높은 직위에 있는게 싫었던 것이다.

“나는 말이지 조나라의 장군으로서 타국의 성을 공격하고 들판을 달리며 목숨을 내걸고 싸워 온 큰 공이 있지 않나 말일세! 그런데 인상여는 본래가 비천한 출신인데다가, 그까짓 혀끝 몇 번 잘 놀린 대가로 왜 나보다 윗자리인 상경의 직위에 오르느냔 말이야. 난 그 자의 밑자리에 있는게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어. 언제 만나기 만 해 봐라. 단단히 모욕적으로 따져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지!”

인상여가 그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염파와 만나려 하지 않았다.

조정에 나갈 일이 있어도 인상여는 병을 핑계로 함께 설 자리를 피했다. 서열을 다투는 일이 싫었던 것이다.

심지어 인상여는 마차를 몰아 가다가 먼발치에서 염파를 발견하면 하인에게 골목으로 피하도록 했다.

이쯤 되자 인상여 가신들의 불만이 예사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주인한테 몰려와 따지기까지 했다.

“저희들은 부모를 떠나와 당신을 부모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염장군보다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그에게서 그토록 모욕을 당하시며, 심지어 그가 두려워 숨기까지 하십니다. 가신인 저희들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조차도 창피한 일이거늘 당신 같이 높은 지위에 계신 분으로서 어찌 그토록 용렬하신지요. 이제 저희들로선 그런 당신을 존경해 섬길 수가 없어 떠나고자 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인상여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되물었다.

“그대들이 보는 염장군은 어떤가?”

“용렬하지도 않고, 당당하고 위세가 있지요.”

“진나라 왕은 어떤가?”

“그야 무섭지요.”

“염장군과 진왕을 비교해 어느 편이 더 무서운가?”

“진왕이 훨씬 두렵습니다.”

“염장군도 진왕을 어렵게 생각할 것 같은가?”

“내심 두려워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진왕을 겁내던가?”

“그건…”

“그것보게. 그토록 당당하고 살벌한 진왕의 위세 앞에서도 나는 눈썹 한 번 깜박이지 않았네. 어디 그 뿐인가. 바로 진의 궁중 안에서 진왕을 꾸짖으며 그의 신하들까지 욕보인 나일세. 그런 내가 정작 염장군을 두려워할 것 같은가?”

“그렇지만 피해다녔습니다.”

“한 가지 물어보겠네. 그토록 강대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직 우리 두 사람 때문일세. 인상여와 염파 말일세!”

“예에?”

“비유하자면, 두마리의 호랑이가 싸워 힘을 탕진해버리면 어떻게 되나.”

“결국 둘 다 살지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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