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그 우승은 내게 맡겨라.”

`월드스타' 김세진(27·삼성화재)과 `코트의 임꺽정' 임도헌(29·현대자동차)은 90년대를 호령했던 한국 남자배구의 거포들.

대학 때부터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선 채 울고 웃기를 거듭했던 이들이 1년만에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슈퍼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초심에는 변함이 없지만 팬들의 기대에 보답할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다.

더구나 어쩌면 이들로서는 피차 이번이 정상의 기량으로 맞서는 마지막 승부가 된 셈.

지금까지는 김세진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전매특허인 고공 강타가 고비 때 임도헌의 두 손에 걸려 가끔 주눅들곤 했지만 신진식을 비롯한 후배들의 두터운 커버플레이는 `간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도 남았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이 탓인지 겨울마다 찾아오는 무릎 통증이 심해져 슈퍼리그 초반 내내 벤치신세를 져야했다.

“이러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에 잠든 아내 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고백은 TV 전파를 타고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김세진은 2차대회 막판들어 용수철같은 점프력을 과시하며 고비마다 득점타를 터트려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듯 눈가에는 더욱 힘이 붙었다.

`돌아온 장사' 임도헌 역시 김세진처럼 팀의 해결사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어느덧 은퇴를 앞둔 시기에 삼성화재에 당한 수모를 씻고 6년만의 정상 탈환을 이끌겠다는 다부진 각오다.

지난해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점프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간 코트에서 쌓은 `눈칫밥'을 앞세워 주가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18일 챔프전 티켓이 걸린 3차대회 상무전에서 임도헌은 승부처인 4세트 중반 스피드 플레이를 통한 알토란같은 3득점으로 팀을 역전패 위기에서 구했다.

현대차 강만수 감독은 자신이 우려했던 대로 레프트 이인구의 페이스가 떨어져 부담스럽지만 대신 임도헌이 결정적 순간 제 몫 이상을 해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노장의 자존심이 걸린 두 스타의 정면 대결은 무엇보다 스포츠맨십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승패를 떠나 진한 감동을 팬들에게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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