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뒤숭숭하게 들끓고 있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병리현상이 있다. 바로 유언비어(流言蜚語)의 난무이다. 순리가 통하고 진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도저히 발을 못붙일 유언비어가 근간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카더라방송’ ‘유비통신’과 같은 출처가 분명치 않은 유언비어일수록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고 선동을 불러일으키는 독소를 지니고 있다.

또한 대중의 심성을 마구 뒤흔드는 부정적인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소외된 계층, 불이익만 받고 있는 불만집단에서는 한층 더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최근,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가신그룹과 개혁파의 마찰로 인해 파열음이 터져나옴으로써 그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얼마전 이 지역출신 이주영 국회의원이 터뜨린 정현준 리스트와 관련, 3명의 여권 고위인사의 연루가 맞다더라로부터 노벨평화상 수상, 남북정상회담 개최 성공의 이면에는 거액의 공여설이 있었다는 참으로 밑도 끝도 없는 허황된 악성루머가 판을 치고 있으니 한심하기가 이를데 없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천문학적 거액을 마구 뽑아쓴 젊은 벤처 기업인의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낯짝을 보고 분통이 터지기 전에 선량하게 살아온 우리의 처지가 너무나 왜소하고 서글퍼지기만 할 뿐이다.

일찍이 고대 로마제국에는 유언비어 병균이 만연해 시달린 사건이 허다했다. 그 중 서력 64년에 일어난 로마대화재는 흥미있는 실례를 보여준다. 엄청난 재해를 입었는데도 로마시민들은 저 유명한 황제 네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얘기만 믿고 이를 유포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네로는 이 대화재를 일으킨 직접 범인이 아니며 그는 맹렬히 불타오르는 화염의 야만적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시를 읊조리고 있잖았는가 하고 말이다.

당시 네로는 불리해질대로 불리해진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증오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방화의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 역선전을 취했던 것이다. 저주받고도 남을 그리스도 신자라면 능히 방화를 했으리라 확신하고 군중들은 분통을 터뜨릴 또 하나의 표적을 찾아냄으로써 네로에 대한 적대감정을 한때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일본 관동대지진 사건 때 일이다. 이재민 340만명, 사망자가 무려 9만명을 훨씬 넘겼으니 엄청난 재앙임에 틀림없다. 지진의 여파로 소용돌이치는 일대 혼란속에 정체모를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불령조선인이 나서서 방화하고 독약을 뿌려 일본인을 살해한다’ ‘일본여자를 강간한다’ 등등으로 뜬금없는 헛소문이 일본인에게 적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유언비어에 뒤를 따라 5개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함과 동시에 민간인들이 주축이 되어 ‘자경단’을 조직하는데도 주저치 않았다. 살해해도 좋다는 경찰의 지시를 받은 자경단은 조선인 사냥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죽창·칼·도끼·낫으로 조선인을 닥치는대로 살상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여성들을 강간하고, 생식기를 도려내거나 사지를 찢어 죽이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르고만 것이다. 이때 피살된 조선인은 총 6661명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도 유언비어가 난무한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꼽는다면 3·15의거 당시 ‘인민공화국 만세사건’이다. 1960년 3월 15일 밤 데모군중속에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다는 악성루머로 인해 거의 한달에 걸쳐 공포분위기 속에 생활했던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자유당은 마산을 인민공화국 도시로 몰아붙이며 깡끄리 시전체를 없애겠다고 벼르고 나서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유언비어야말로 사회의 불만·불신·불안이 낳은 한시대의 총체적 반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언비어는 공식기관의 책임있는 해명 앞에는 기를 못쓰기 때문에 관계기관의 공신력 실추가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국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강도 높은 폭로성 질문에 구체적 반증 제시없이 단순히 사실무근이라 꼬리를 뺄 때 불신은 쌓일 수 밖에 없다. 각종 유언비어를 종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유언비어 신고·해명기구를 적극적으로 운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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