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마산 가포고등학교(교장 박태길)에서 있었던 한 문학동아리의 문집출판기념식. ‘큰들’이라 이름 붙여진 문학동아리 회원들이 1년 동안의 활동을 하나둘 엮어 만든 3번째 문집이 나오는 날.

동아리의 이름을 딴 <큰들 3집>을 출판하는 총책임을 맡아했던 편집장 수민(여·2학년)이가 책이 출간된 소감을 이야기하다 머뭇머뭇 목이 멘다. 그러자 회원들은 물론이고 교사와 교장까지 격려의 말을 한마디씩 건넨다.

평범한 풍경이라면 평범한 이 모습이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이들의 활동이 열린교육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라는 데 있다.

큰들은 97년 만들어졌다. 가포고등학교가 개교한 후 꼭 2년만에 이 학교로 옮겨온 이필우(39·국어담당) 교사가 기존 문예반 동아리였던 ‘글사랑’을 인수하면서 큰들로 이름을 바꾸고 아이들과 함께 동아리 모양새를 하나씩 다듬어 갔다.

동아리방에서 모여 앉아 시간만 때우던 식의 활동이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직접 부대끼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학습으로 바뀌었다.

체험학습의 결과물이 큰들이란 문집으로 탄생하기까지 아이들은 여름방학에는 환경·문학 등을 테마로 2박3일간의 여름기행을 떠났다. 미당 서정주나 백능 최남식 선생의 혼이 담긴 현장에서 그들의 문학작품을 보고 듣는다.

새만금의 물이 썩어가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을 때는 새만금현장에서, 강원도의 동강이 댐 건설로 수몰될 지 모른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아이들은 동강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정선아리랑이나 이효석의 문학세계, 혹은 방랑시인 김삿갓 등 지역과 관련된 문화를 섭렵하고 돌아온다. 물론 현지 전문가의 강의와 토론은 빠지지 않았다.

겨울에는 역사기행을 떠났다. 제주도 4·3항쟁의 현장, 천년의 신라고도 경주를 찾아 경주문화의 뿌리인 민중불교를 배우는가 하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찾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필우 지도교사는 “현장학습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건전한 비판정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하는 능력과 글쓰기가 향상되는 학습효과가 있다”며 “작은 시도지만 획일화된 교육의 한가지 대안으로 삼을 만 하다”고 강조했다.

여느 학교에서나 가는 캠핑이나 견학수준의 방문은 결코 아니다. 아이들은 기행을 떠나기 전에 두달쯤 전부터 계획을 짠다. 인터넷을 통해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현장에서 직접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전문가를 선정하고, 그리고 현장에서 혹은 다녀온 뒤 그룹으로 토론을 벌인다.

방과후나 휴일에는 가까운 곳을 찾는다. 도예마을을 찾아 직접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직접 배우기도 하고, 마산국제연극제나 부산국제영화제 등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는 빼지 않고 견학한다.

물론 그 속에서 얻은 감상이나 구체적인 자료는 큰들문집에 고스란히 담긴다. 99년부터 해마다 만들어온 문집이 매번 200쪽 분량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이렇게 배우고 익히고 결과물로 남기는 과정이 교실안에서 배운 가르침과 같을 순 없다.

교사와 회원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3집의 편집장을 맡았던 수민이는 말했다. “순간순간 잊을 수 없는 기억들, 다음 언젠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지금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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