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물살 함성’ 그래,이곳이야!

“와, 하얗다!” 앞서 가던 꼬마 아이가 탄성을 내지른다. 산골짜기라 우거진 숲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 눈 내리는 겨울도 아니고 무슨 하얀색이야? 하지만 꼬마가 꽂아두고 있는 눈길을 따라가 보면 괜히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골짜기의 맑은 물을 왜 옥계수(玉溪水)라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푸른 잎 사이로 선득선득 눈에 밟히는 계곡물은 바위 이쪽저쪽을 부딪히는 통에 잘게 부서져 그지없이 하얀빛으로 흐른다.
당장은 소리만 크게 들리지만 조금만 가면 바로 만날 수 있겠거니 기대를 갖게 한다. 들머리에서 만났다 헤어진 물이, 이미 더욱 차고 맑은 물이 골짜기를 적시고 있음을 일러주었으니 오르는 걸음에 힘이 실린다. 산을 훑는 바람에 물기가 서려 있다. 가파른 오르막이라 땀도 흐른다. 하지만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 사이로 길이 나 있어 시원한 느낌이 더하다.
20분 남짓 걸으면 아담한 폭포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약물이라고 여기저기 탁족을 하거나 몸을 담근다. 규모는 어디서나 쉽사리 볼 수 있는 정도지만 아래위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위에는 층층절벽이 이어져 쇠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돼 있다. 왼쪽 먼등에는 커다란 구멍이 세 개나 뚫린 바위가 버티고 섰다. 골짜기에 발을 담근 채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니 60~70m는 되어 보이는 절벽이 바로 눈앞에 있다. 골짜기 맑은 물에 정신이 팔려, 채 살피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다.
여기서 발길을 멈추면 구만산(785m)에 온 뜻을 반의반도 이루지 못하는 셈이다. 등산길은 여기서부터 더욱 변화무쌍해진다. 골짜기 이쪽을 걸을 때는 저쪽 절벽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골짜기 저쪽으로 건너가면 떡판 같은 절벽에 ‘백년을 자랐어도 십년밖에 안된 것 같은’ 곰솔이 매달려 아롱거린다. 계곡은 남북으로 길게 뻗었고 절벽은 동서로 좁고 깊게 마주 보기 때문이다.
땀 흐르는 줄도 모르고 오르기를 1시간, 진짜 대단한 폭포가 가로막고 있다. 한참 떨어진 너덜겅에서 바라보니 하얀 모시 한 필을 걸쳐 놓은 듯하다. 높이가 42m라는데, 가까이서는 물이 2단으로 층을 이뤄 떨어지는 걸 알지 못한다.
귀를 멍하게 하는 소리, 자디잘게 알갱이를 이루며 흩어지는 물. 으스스한 찬 기운이 사방으로 번지는데 배낭을 끌러 물통을 끄집어내는 그 짧은 동안에 바로 옷이 젖어버렸다. 뿌옇게 흩어지는 물보라 덕분이다.
여기서 산마루까지는 서둘러 가면 40분 남짓, 쉬엄쉬엄 올라도 1시간이면 족하다. 폭포 위로 오르는 길은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직벽 위에 오솔길이 나 있고 가느다란 줄 하나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어가며 난간이 되어 주고 있다.
여기서 보는 절벽과 폭포는 새롭고 상쾌하고 웅장한 맛을 더해 준다. 가지 사이로 병풍 같은 바위가 보이는데 마치 손을 내밀면 졸졸 흐르는 석간수를 만질 수 있을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처럼 풍경에 정신이 팔릴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위험하다고 말해 두는 것이다. 이 곳을 지난 다음에도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하지만 길은 가파르면서도 밋밋하다. 둘레에 봐 둘만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고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빼어나지는 않다.


△가볼만한 곳 - 금곡삼거리

구만산은 얼음골 가는 길에 있다. 이 길에는 표충사도 있고 영남루도 있고 다른 빼어난 산들도 많다. 또 밀양강가도 아주 좋고 솔숲이 울창한 긴늪 유원지도 분명한 자랑거리다.
하지만 구만산 오가는 길에 잠시 짬을 내어 이런 데를 들러보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다. 자칫 잘못하면 주객이 뒤바뀌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금곡삼거리에 발길을 잠깐 멈춰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금곡삼거리는 밀양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오른편 옆구리로 표충사 가는 길을 떼어내 주는 자리다. 아마 대중교통이 훨씬 성했던 옛날에는 분기점 노릇을 톡톡히 했을 법하다. 그래서인지 30년 안팎은 되어 보이는 단층이나 2층 짜리 건물들이 빼곡이 모여 있다. 식당도 있고 다방도 있고 노래연습장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30.40대쯤 되는 이라면 이런 데서 한 번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처녀 다방이라니, 다방 이름도 희한하다. 처음 지나는 이들은 최근에 지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기 쉬운데, 아는 이들은 10년도 넘는 옛적부터 이름이 처녀였다고 말한다. 노래연습장도 같이 붙어 있는데, 아무래도 처녀 다방보다는 뒤에 생겨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맞은 편에는 황제다방과 산동식당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황제다방에서는 물론 베토벤의 교향곡이 흘러나올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어깨에 조금은 힘이 들어간 나훈아풍의 노래가 울려나오기 십상이지 싶다.
다리를 외로 꼬고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아무렇게나 귀를 내맡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십수 년 전, 갓 어른이 됐을 때 기분을 떠올리며 부부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여유이겠다는 느낌이 든다.
또 무슨무슨 가든에서 기름기 둥둥 떠다니는 고기탕 먹는 것보다는 산동식당에서 짬뽕 한 그릇 먹는 게 나을 듯도 하다. 아니면 길가에 다리 뻗고 이쪽이나 저쪽 구멍가게에서 사온 얼음과자를 식구대로 빨아먹어도 느낌이 색다르겠다.



△찾아가는 길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는 아침 6시 10분부터 저녁 8시 20분까지 20분마다 1대씩 밀양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진주에서는 5분마다 있는 마산행 버스를 타고 와서 갈아타면 된다.
밀양에 닿아서는 다시 얼음골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40분까지 어림잡아 30분 간격으로 차가 있으며 나오는 차편도 아침 6시 5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같은 간격으로 배치돼 있다.
얼음골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산내면 사무소가 있는 송백리에서 내린다. 길을 건너서 산내초등학교 뒤쪽으로 꼬부라져 들어간 데가 구만산 산행 들머리가 된다.
자동차를 몰고 가려면 국도 14호선과 25호선.24호선을 번갈아 타야 한다. 물론 진주나 마산에서 남해고속도로에 올린 다음 동창원.진영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국도 25호선에 차를 실어도 된다.
25호 국도를 따라 밀양 시내를 가로지른 다음 24호선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죽 달리면 된다. 금곡삼거리에서 표충사쪽으로 틀지 말고 얼음골을 향해 곧바로 달리면 10분 정도 걸려서 송백리가 나온다.
구만산을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도 없지만 길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만산장’을 알리는 조그만 표지판이 굽이마다 총총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콘크리트길을 따라 1km 남짓 걸으면 구만계곡이 나온다. 구만계곡은 통수골이라고도 하는데 마치 커다란 통처럼 계곡이 깊고 높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인곡마을 봉의저수지를 거쳐 오르는 등산길도 있고 구만계곡으로 해서 인곡마을로 빠져나와도 되겠지만 구만계곡으로 올랐다가 구만계곡으로 내려오기를 권하고 싶다. 골짜기를 감싸는 바위와 물이 좋고 멋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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