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은 염파의 결의에 찬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일단 길을 나선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좋소. 가상한 결의요. 그러나 인상여가 봉행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드디어 조왕은 면지에서 진왕과 회합하게 되었다. 술에 얼큰해진 진왕은 조왕에게 오만한 소청을 했다.

“과인이 듣기로는 조왕께선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과인에게 거문고를 한 번 탄주 해 주시겠소?”

외교관계상 타국의 왕에게 거문고를 탄주시킨다는 일은 결례의 극치였다.

조왕은 두려운 시선으로 인상여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인상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별 수 없었는지 조왕은 거문고를 뜯었다.

신이 난 진나라 관리 하나가 뛰어나와 소리질렀다.
“이렇게 기록해 두겠습니다. ‘모년 모월 모일 진왕께선 조왕과 만나 술을 마신 뒤 또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했다’고.”

인상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왕께서는 질장구를 잘 치신다고 들었습니다. 한 곡 부탁드립니다.”

진왕은 화를 냈다.

“과인은 싫소!”

“제발 한 곡조만 부탁드립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소!”

인상여는 진왕을 쏘아보았다.

“그으래요? 하지만 대왕과 신의 사이는 다섯 걸음 밖에 안됩니다. 제 목을 찌른 피가 대왕의 몸을 적실 수도 있지요!”

진왕은 인상여가 여차하면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무어라고?”

진왕의 부하들이 인상여를 베려하자 인상여는 재빨리 진왕 곁으로 붙어섰다.

“어디, 다가와 보시지!”

진왕도 별 수가 없었는지 조왕을 위하여 질장구를 때렸다.

인상여는 조나라 기록관에게 말했다.

“적어놓게나.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을 위하여 질장구를 쳤다고.”

진나라 근신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국의 왕을 감히 약소국인 조나라 신하가 우롱하는 듯해서였다.

“조나라는 15개의 성시를 진왕에게 바쳐 진왕의 장수를 축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인상여는 눈을 껌벅인 뒤 대신해서 말했다.

“좋은 제안입니다. 그런데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다고 합니다. 진에서도 수도 함양을 조왕에게 바쳐 장수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쯤 되자 진의 군신들도 기가 질리는 모양이었다. 결국 잔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조왕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인상여 때문이었다.

한바탕 싸울 생각도 해 보았겠지만 면지에 모인 두나라 군사의 수가 비슷해 진에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회합은 흐지부지 끝나고, 각각 귀국했다. 조왕은 인상여의 공적을 크게 평가해 상경(上卿)의 직위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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