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민속문화제를 앞둔 창녕. 해마다 창녕은 이맘때면 3·1운동 당시 영산면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24인의 결사대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중 4인만이‘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을 뿐 나머지 20명은 아직도 수훈자로 지정되지 않아 유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나머지 20명이 수훈자 4명과 같이 훈장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생명을 걸고 다함께 운동에 나섰기 때문. 영산독립운동주동자유족회는 그 경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3·1운동 당시 영산면 천도교인 구중회·장진수·김추은 등은 천도교 중앙으로부터 의거소식을 전해듣고 일찍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의거일을 3월13일로 결정하고 목판으로 태극기와 요약된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뒤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까지 준비했다.

3월12일 밤 구중회의 집에 모여 다음날 거사를 숙의한 24명은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구남회·구판진·신암두·장정수·구판돈·하은호·서점수·김두영·조삼준·박중훈·김찬선·최봉용·이기석·권점동·하영규·김금영·이수철·임창수·박도문.

이들은 13일 영산 남산봉에 모여 결사단원 맹세서에 서명한 뒤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남산봉 만년교 부근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몰려든 경찰에 맞서 총칼을 빼앗아 미나리꽝에 처박아넣는 용감한 태도로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이들은 그러나 모두 검거돼 각각 6개월에서 2년형에 이르는 옥고를 치렀다.

영산독립운동 주동자 유족회측에 따르면 지난 89~91년 사이 결사대 24명중 구중회(징역10월) 김추은(징역10월) 장진수(징역10월) 임창수(징역6월) 등 4명은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20명은 지난 99년 10월 수훈자 지정을 희망하는 탄원서가 청와대·국회·보훈처 등 관계기관에 제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뚜렷한 회신이 없다.

문제는 지난 2000년까지 24인의 결사대 모두에게 대통령표창이 주어졌으나 보훈처는 4명만을 수훈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 당초 보훈처는 4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형량을 고려, 수훈자를 지정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유족들은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애족장을 받은 임창수씨는 징역 6월을 언도받았지만 수훈자로 지정되지 않은 남경명씨 등 9명은 징역 8월을 언도받았기 때문.

영산 독립운동주동자유족회원 조진구(61·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씨는 “같은 날 같은 뜻으로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으나 4명은 수훈자로 지정되고 나머지 20명은 미수훈자로 남아 결사대로 나섰던 선조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3·1민족문화향상회측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가보훈처에서 어떤 기준으로 서훈 대상자를 선정하는지 알고 싶다”며 국가보훈행정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2002년 행사때부터 결사대 24명이 3·1독립만세를 부른 내용으로 가장행렬을 재현해 볼 계획이라는 3·1민속문화향상회 신수식 회장은 수훈자 지정과 관련해 “결사대 24명 모두가 국민훈장애족장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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