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에 걸터앉아 강바람 만끽해봐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더한 말이다. 누각은 사방이 탁 트이도록 높다랗게 지은 다락집을 일컫고 정자는 놀거나 쉬기 좋도록 경치나 전망이 좋은 데다 지은 아담한 집을 말한다.
가든은 무얼까· 영한사전에는 뜰, 정원이라 돼 있지만 태평양을 건너 낯선 이 땅에 와서는 닭·개·소·돼지·오리 따위 짐승을 잡아 파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누정(樓亭)과 가든(garden)의 거리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누정과 가든은 풍경이 좋은 데 자리잡았다는 데서 닮았다. 자연 안으로 들어가 앉은 인공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다락처럼 둘레보다 높다랗게 지어올린 것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하나는 어울리게 자리잡은 반면 다른 하나는 일대 생태계를 망가뜨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탁 트인 누정에는 자연 바람이 드나들지만 꽉 막힌 가든에서는 인공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누정이 보일 듯 말 듯 숨은 반면 가든은 여봐라는 듯이 몸통을 있는 대로 드러내 놓았다는 데 있다. 눈에 잘 띌수록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누정은, 관리하는 자치단체 입장에서 보자면, 숨어 있을수록 좋다. 왜냐면 제대로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안보이면 낡고 헐어도 그냥 넘어가는데 굳이 띄게 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정자 안내판이 하나도 없는 게 바로 이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보는데, 이를테면 여기에도 자본의 논리가 차갑게 꿰뚫어 버린 것이다.
와룡정·악양루·합강정 등 함안의 정자들은 초라할 정도로 작긴 하지만 자리는 참 멋진 데 잡았다. 자리가 너무 좋아서인지 합강정만 안 그럴 뿐 나머지 두 곳은 더욱 화려하고 눈에 띄는 같은 이름을 단 음식점에 밀려나 버렸다.
함안의 가장 북쪽인 합강정은 말 그대로 두 강이 포개지는 자리에 있다. 둘레에는 아무런 가든도 들어서지 않았다. 발아래 물이 남실거리고 바람까지 시원스레 불어 풍경이 좋기는 하지만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겠다.
서쪽에서 온 남강이 남쪽으로 가는 낙동강에 몸을 부리는데, 살랑대는 바람 너머 멀리에는 남지철교가 보인다. 정자 앞에는 350년 넘은 은행이 버티고 섰으며 풀밭이나 물가에는 엉덩이 깔고 놀만한 자리가 넉넉하다. 퇴락은 했지만 대청 마루에 자리를 펴도 좋겠고.
‘정자’ 악양루는 ‘횟집’ 악양루를 가로질러야 나온다. 횟집 뒤의 바위를 넘어 왼편으로 낭떠러지를 낀 채 샛길을 따라 가면 옛적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을 악양루가 나타난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불어난 물이 황토색인데 통째로 수풀에 파묻힌 덕분인지 잠깐만 있어도 온몸이 시원해진다. 손이라도 물에 적시려면 왼편으로 되나와 숲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지금은 흙탕물이라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길이다.
와룡정도 ‘밥집’ 와룡정을 지나고 무슨무슨 가든을 지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리 새끼 와글거리는 와룡 양수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숲이 서성댄다. 그 옆에 있는 정자가 와룡정이고 흙담에다 낸 문이 유사문(由斯門)이다.
옛날에는 일대가 모두 와룡정에 온 사람들의 놀이터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운흥사라는 절이 전망 좋은 데를 차고앉아 주인 노릇을 하고 정자는 한쪽 귀퉁이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언덕 마루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전망 좋은 자리가 여러 군데 있다. 방어산쯤으로 짐작되는 산은 구름으로 머리를 가렸고 강가 갈대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되는대로 깔깔거린다. 부옇게 거품을 내며 고인 듯 흐르는 물은 조금씩 차오르는 느낌을 준다.



△가볼만한 곳 - 남강서원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사람에 따라 또는 문중에 따라 답은 다르겠지만 이방실 장군이 아닐까 하는 사람이 많다.
이방실은 고려 시대 장군으로 함안 이씨의 시조가 된다. 1298년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나 1362년 숨진 것으로 돼 있다.
공민왕 시절 원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을 손수 치기도 하고 삼남 일대를 괴롭히던 홍건적 무리를 토벌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성계·최영 등과 함께 일세를 떨쳤던 영웅으로 고려 500년을 지킨 16공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함안군은 이방실을 기리기 위해 함안 들머리 종합운동장 맞은편에다 기방실 기마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 5월에 공모작을 뽑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 군북면 서포마을 남강서원도 함안 이씨 종중 땅에다 함안군이 8억원을 들여 새로 다듬은 것이다.
정문인 성경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강학 공간인 남강서원이 있고 뒤쪽에는 재실이 있는데 정문 오른편에는 경모재, 왼편에는 영덕당이 있다. 정문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비석이 둘 서 있다.


△찾아가는 길

함안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길 안내는 지나치게 거친데다 맞지 않은 데도 많다는 걸 먼저 말해둬야겠다. 이를테면 근처 지리를 아는 사람이나 알아볼 정도밖에 안된다.
길가 안내표지판도 전혀 없다. 반면 ‘처녀뱃사공 노래비’는 곳곳에서 안내한다. 윤항기·복희 남매의 아버지가 유랑극단 시절 오빠를 군대 보내고 대신 노를 젓는 애절한 사연을 듣고 지었다는 노래비만 잔뜩 알리고 진작 소중한 누정들은 눈밖에 내놓고 있다.
악양루는 남해고속도로 함안나들목으로 빠져서 왼쪽 101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된다. 악양삼거리에서 1011번 지방도는 왼쪽으로 휘어져 버리고 1041번 지방도가 대신 죽 이어간다.
악양교를 지나자 마자 오른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처녀뱃사공 노래비의 대각선 건너편에 ‘횟집’ 악양루가 나온다. 횟집을 지나 강쪽으로 쑥 들어가면 ‘정자’ 악양루가 있다.
합강정에 가려면 처녀뱃사공 노래비에서 고개를 넘어야 한다. ‘대산’이 적힌 표지를 따라가면 구혜리가 나오는데 여기를 살짝 지나 장터 들머리 진성학원 간판 있는 데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된다.
여기서 장포마을 표지석까지는 500m 남짓이고 표지석에서 장포마을은 3km 정도 된다. 다시 강가 배수장까지 1km 더 가야 하고 오른쪽 비포장길로 1km 남짓 가야 합강정이 나오는데 길이 좁고 험해서 걸어가는 게 낫겠다.
와룡정은 남해고속도로 함안 나들목에서 오른쪽 가야읍으로 접어든 다음 79번 국도 따라 군북면 쪽으로 빠져나간다. 군북역을 지나 나오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월촌 마을이 나온다.
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월촌초등학교를 끼고 돌면 와룡정 가는 길이다. 남해고속도로 장지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의령쪽으로 가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는 와룡정 운흥사라든지 무슨 가든 알리는 것들이 전봇대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길을 놓칠 염려는 안해도 된다.
남강서원은 어디 있을까. 와룡정에 들렀다가 되밟아 오다보면 군북역을 다시 지나게 되고 여기서 3km쯤 되는 데 소포마을이 있다. 마을 안으로 300m 가량 들어가면 남강서원이 모습을 나타낸다. 잘 모르겠거든 함안군 문화관광과(055-580-2051)에 전화를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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