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벽이 다시 조나라로 몰래 돌아가고 난 후였다. 진왕은 인상여에게 궁중에서 구빈의 예를 베풀며 인견했다.

“과인은 그대가 일러준대로 모두 이행했소. 벽을 돌려주오.”

“진나라에서는 목공 이래로 20여 명의 군주가 계셨으나 한 분도 아직 약속을 지킨 분이 없었습니다. 소신의 입장에서는 대왕한테 속고 또한 조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그것만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벽을 가지고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무어라고!”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지금이라도 대왕께선 단 한 사람의 사자라도 조나라로 보낸다면 지체없이 벽을 받들고 올 것입니다. 강한 진나라가 15개의 성시를 조왕에게 넘기는데 어찌 감히 조나라가 대왕에게 벽을 내놓지 않겠습니까?”

“무엄한 놈이로구나! 저자를 당장 삶아 죽여라.”

근신들도 분노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감히 우리 주군을 속이다니!”

“소신은 어차피 대왕을 속였습니다. 그 죄 죽어 마땅하나 죽이시더라도 충분한 상의나 한 후에 죽이십시오.”

일단 인상여를 끌어내 보낸 뒤 진왕은 근신들과 상의했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 해도 벽은 이미 얻을 수 없을 게 아니겠소?”

근신들도 흥분이 가라앉아 모두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로 인해 진과 조의 우호만 끊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약속만 지켰다면 조왕이 어찌 한 개의 벽 때문에 진을 속였겠습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인상여를 후대한 뒤 조나라로 돌려 보내지요.”

“그 편이 나을 것 같소.”

인상여가 온갖 빈객의 예우를 다 받은 뒤 마침내 귀국하자, 조왕은 몹시 기뻐했다.

“현명한 인물이 사신으로 갔으니 왕을 욕보이지도 않았고, 보물도 빼앗기지 않았소!”

그러나 그 이후로 진나라는 조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드디어 진왕은 조왕한테 서신을 보냈다.

‘그대와 친하게 지내고 싶소. 서하 남쪽 면지에서 만났으면 하오.’

조왕은 두려웠다. 회합하러 갔다가는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때 대장군 염파는 인상여와 상의한 뒤 조왕을 달랬다.

“가십시오. 가지 않으면 조나라는 약하고 비겁하다는 평판만 듣습니다.”

그래도 조왕이 머리만 내젓자 인상여가 나섰다.

“소신이 봉행하겠사오니 걱정 마시고 가십시다.”

“그대의 간청이라면 가겠소.”

조왕은 그제서야 갈 길을 허락했다. 그만큼 인상여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국경까지 따라나온 염파는 조왕과 작별하기 직전에 말했다.

“대왕께서 회견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기간은 한 달입니다. 만일 그 때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청컨대 태자를 왕으로 모셔 진나라의 야망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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