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꼭 붙잡고 가던 엄마의 손이 어느새 내 손에서 빠져나가 3시간여 낯선 곳을 울며 돌아다닌 적이 있다. 처음엔 금세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날 것 같아 태연히 주위를 돌아다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익숙한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낯설음에 한참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서야 엄마 품에 안겼던 기억.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분을 느낀 건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척(톰 행크스)을 본 순간이었다. 파도에 밀려 홀로 살아남은 척은 처음엔 마치 해운대 모래사장에 떨어진 듯 “헬로”를 외치고, 자신이 배달해야 될 고객들의 소포를 소중히 챙겨 놓는다. 모래사장에는 “헬프”라고 이름을 새겨 놓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혼자인 것을 알았을 때, 주위의 도움을 받을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척은 무기력해진다.

가장 미국적인 배우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톰 행크스는 이 영화에서 유감없이 그만의 특기를 보여준다. 할리우드에서 지향하는 영웅적 모델이 아닌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표현할 줄 알고 때론 앙탈도 부릴 줄 아는 모습. 하지만 영화 시작 20여분만에 사방은 푸르디 푸른 바다뿐이고 유일한 말동무는 자신의 피로 얼굴을 그려놓은 배구공 ‘월슨’뿐인 곳에 홀로 남겨진 척을 지켜보기란 예전의 감정을 떠올리며 지켜보더라도 솔직히 지루했다.

스케이트 신발을 도끼날 대용으로 사용하고, 망사 드레스를 그물로 이용해 생선을 잡을 때 몇 번 터지던 실소도 한계에 다다를 때쯤 척은 구출되지만 이미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던 연인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는 의도된 비극을 지켜보는 것도 지루함의 보상으로 뭔가 부족했다.

즉 멜로에서 재난으로 다시 멜로로 흐르는 정형화된 공식을 따르는 것은 내러티브에 너무 의존함으로써 다음 상황을 기대하게 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저메키스 감독이 신뢰한 한 배우를 통한 톰 행크스의, 톰 행크스에 의한, 톰 행크스를 위한 영화가 되어 버린 <캐스트 어웨이>는 어느 방송사 프로그램의 ‘스타 모놀로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 “무인도에 갈 때 가지고 갈 세 가지”처럼 식상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주인”이라고 말하던 모습에서 불을 피워 놓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천진난만함과 월슨을 망망대해에 잃어버리고 5살 꼬마처럼 엉엉 울던 모습의 톰 행크스의 연기력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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