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글, 평화와 양심 다스린다

◇기록관리와 품격

"기록관리와 품격은 대중에게 공감받기 어려울 듯." 내가 올해 들었던 가장 당황스러운 말 중 하나다.

그동안 나는 기록관리는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품격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가치나 위엄"이라 적시하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품격이라는 단어를 많은 곳에서 드러낸다. 노년의 품격, 신사의 품격, 말의 품격 심지어 줄서기의 품격까지 다양한 형태의 것들과 결합해 그것들이 지향해야 할 최종목표점을 드러내곤 한다. 그렇다면 기록관리에서 '품격'이란 어떤 의미와 목표점을 가질까? 나는 그 해답을 오향녕 선생님이 쓰신 <기록한다는 것-떠든아이 효과를 아시나요?>에서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책을 요약하자면 "보통 학교 칠판 한구석에 '떠든 아이'라고 쓰고 그 아래 이름을 적는 전통이 있다. 예전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반장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이름을 적고 있었다. '떠든아이 ○○○', 돌이켜 보면 '떠든 아이'에 이름이 적혔다고 선생님이 벌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이름을 지워주지 않는 반장을 다음 학기에는 뽑아주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한다.

외국에도 그럴까? 중국, 미국 영화를 유심히 살펴봐도 그런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교실이라는 공동체의 평화를 그저 칠판 하나에 이름 하나 적는 것으로 유지할 수 있던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어린 나이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말과 글로 질서를 유지하는 품격 있는 정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떠든아이 효과'라고 설명한다. 우리들은 이 효과를 어디에서 배웠을까? 잘했든 잘못했든 자신의 행동, 길게는 인생이 어디엔가 기록되어 남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략)"

저자가 말한 '떠든아이 효과'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태종실록 권7 4년2월8일 기록에 의하면 "왕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며 사냥을 했다. 그러다가 말이 거꾸러져서 왕이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좌우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무소불위의 왕 태종은 자신의 행위가 기록됨으로써 후대 사람들이 느낄 감정을 두려워 한 것이었다. 이는 기록의 가치를 두려워하며 품격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왕들의 행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나는 두 이야기들을 통해 기록관리가 품격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추상적으로 느끼다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기록되어 남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이는 품격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또한 품격있는 기록관리만이 줄 수 있는 양심의 제어책일 것이다. 기록관리가 품격을 가지지 못하고 중요성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면 기록된다는 것의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가진 '양심 있는 사회'는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기록관리는 품격을 동반해야 한다. 품격이 동반되어야만 기록의 가치가 더욱더 드러나는 것이다. 기록의 가치가 드러날수록 사회는 물리적 제어보다는 양심의 제어로 유지될 수 있다. 그저 이름 하나 적는 것만으로 교실 공동체의 평화가 유지되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품격은 기록관리와 어울리지 않다?

기록관리가 품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국가기록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관리하고 후대에 전승함으로써 책임사회 구현을 지향한다. 또한 지속적인 기록관리 혁신으로 중립성, 전문성을 확보하고 국민이 신뢰하는 기록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이 기록의 가치를 체감하고 공감하는 품격 높은 기록문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올해 국가기록관리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에 나온 '국민이 신뢰하고 공감하는 품격 있는 국가기록관리 실현'의 비전 설명문의 초안이다. 물론 이 비전과 설명문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해 사장될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 기록관리의 품격은 기록의 철저한 관리와 기록관리의 혁신, 중립성, 전문성 확보에 그 답이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신뢰하는 기록관리 체계가 구축되면 국민의 공감을 받는 품격 높은 기록문화가 실현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것은 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까?

▲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내 조선왕조실록(태백산본)이 있는 실록 전용서고. /연합뉴스

◇기록관리의 진정한 현실

이번 달 경남 모 일간지에서 '2020년 경남기록물 관리 원년으로'라는 주제로 기록관리 관련 기획보도를 했었다. 내용은 경남지역 기록관리실태를 분석하고 기록관리를 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효과와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을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기록관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마무리를 했다. 기사는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되기 때문에 기록물 보존현황, 기록연구사 수, 면적대비 기록물 양 등 기록관리 현황에 대한 여러 가지 수치가 나열되었었다. 나는 이 기사에 보태고 싶은 것이 있다. 수치를 뛰어넘은 현실이 그것이다.

기초지자체 기록관을 방문하면 몇몇 시·군 서고는 문을 열자마자 곧 닫아야 할 정도로 음습하고 탁한 공간에 위치해있다. 또한 지하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에 서고가 위치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몇 연구사는 기록물 보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녀 그나마 공간을 확보하지만 그 공간조차 지하에 위치한 것이 일반적이다. 지하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쓰지 않는 온갖 물품이 나뒹굴며 미로찾기처럼 구석구석 남은 공간에 쌓여있는 기록을 보면 그 심정은 참담할 지경이다. 물론 현재 청사 공간이 사람을 수용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록물을 보존하는 서고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던 시절에도 가장 열악한 상황이었다.

또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시작된 기록연구사의 정원도 당해 법, 최소 배치 기준이 적용되어 단 1명의 정원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공무원 정원의 축소정책이든, 확장정책이든 관계가 없이 기록연구사 직렬의 정원은 늘 동일했다. 이는 기록연구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기관의 이해부족으로 기록연구사에게 문서배부, 우편업무 등을 시키며 그들의 전문성을 사장시킨 기관과 더불어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기록관리의 이해를 시키기에는 부족했던 기록연구사인 우리 스스로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품격있는 기록관리, 품격있는 공동체

서두에서 말한 기록관리와 품격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것, 품격있는 기록관리 구현이 국가기록관리 비전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아마 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보이며 이는 결국 전문성을 살리지 못한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품격있는 기록관리는 품격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품격있는 전문가들이 되기 위해서는 기록관리의 최소 기준이 보장되어야 한다. 600년 전, 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사초를 작성·관리하여 사관제도를 정착시킨 초대 사관처럼 기록전문직에게 무한한 열정과 인내와 헌신만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600년이 흘렀고 열정페이는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최소 기준이란 무엇인가? 기록물의 보존환경이 사람이 지낼 수 있는 환경만큼 되어야 하고 기록연구사들이 기록관리 업무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관에서 지원하여야 한다. 또한 기록물 보존량에 따라 기록전문직의 충원도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기록전문직의 열정, 품격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품격과 열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늘 견지한 품격과 열정이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관련제도 개선과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록된다는 것의 두려움을 넘어 기록된다는 것의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에 우리 사회는 보다 더 품격있는 공동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록은 품격을 가져야 하고 그 품격은 온전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한 부분이 될 것이며 온전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저변에 기록전문직의 헌신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보라! 꽤 괜찮은 혹은 기대하지도 못한 혁신과 변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번 기획기사에서 드러난 여러 현실이 그저 흘러가는 풍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품격있는 기록관리로 2020년 경남 기록관리의 '진정한'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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