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직업인 출판편집자들…새로운 작가 발견하는 '전율'

지난 3월 종영한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출판사를 배경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의 로맨스와는 별도로 책 한 권이 탄생하는 과정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국내 대표 출판그룹 민음사에서 일하는 문학편집자 둘이 책을 냈다. 하루에도 책 수십 권을 읽어야 하고 가려내야 하는 이들이 일기 형식으로 쓴 책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다.

책 끄트머리에서 저자들이 지난해 내내 씨름했던 책 목록을 먼저 보았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의 왼쪽 페이지에는 서효인 편집자의 글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박혜진 편집자의 글이 실려있다. 각자 자신의 일상과 밥벌이를 녹여내며 읽은 책을 기록했다.

독자로서 나의 책읽기와 편집자의 책읽기가 어떤지 비교하니 다르면 다른 대로 넘기고, 같으면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서효인 편집자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우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가라앉음의 상태가 된다고 했는데, 공감이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의 여운이 같았다.

또 편집자들의 일상을 보는 것도 재밌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커피잔 씻기, 지우개 가루 쓸어 담기, 읽던 책 제자리에 꽂아 놓기, 그러고 나서 책 낸 지 얼마 안 된 작가들을 검색한다는 박혜진 편집자는 요즘 활동하는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책을 찾아 읽으며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상상을 한다.

민음사에서 직접 출간한 책의 개인적인 후일담도 알 수 있다.

서효인 편집자는 지난해 출간한 김솔 장편소설 <보편적 정신>에 대해 조지 오웰의 <1984>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의 영향 아래 있는데, 그중 마르케스의 후예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저자는 <백년의 고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며, 1967년에 출간한 책을 자신이 2000년에 편집해 새롭게 출간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감흥을 감추지 못했다.

편집자의 안목에 기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책 덕에 문보영 시인을 알게 됐다. 그는 등단하자마자 시집 <책기둥>을 내고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1992년생 시인이다. 시보다 피자를 좋아하고 브이로그로 자신의 일상을 독자와 공유하는 젊은 시인.

서효인 편집자는 <책기둥>을 읽고서 "요즘 가장 문제작이라 손꼽히는 이 시집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 또한 갖고 있다.…시를 잘 쓰는 시인이 또 나타난 것이다. 노력이라는 게 때때로 배신을 일삼는다는 냉혹한 시의 세계에서 또다시 잘 쓰는 자가 등장했다"고 했다.

박혜진 편집자도 문보영 시인을 만나 산문집을 계약했단다. 이에 앞서 작가를 먼저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침 일찍 선배에게서 온 문자 한 통. 문보영 시인을 눈여겨보라는 선배의 문자는 낯선 문학을 새로움으로 발견하는 감각은 끊임없이 갈고닦지 않으면 좀체 획득할 수 없는 능력이다. 평가와 선택의 세계에서는 맨 처음 알아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 자신이 먼저 알아보지 못한 데서 오는 부끄러움은 사실 두려움의 다른 말이다."

두 편집자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박혜진 편집자는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매일 책을 만지는 행위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내 책읽기를 점검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서효인 편집자는 문학이 아니었다면, 책이 아니었다면, 읽음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이렇듯 책을 사랑하는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일을 해낸다고 입을 모았다. 잘 맞는 동료이자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책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의 출판사 서평은 이렇다.

"각자 글을 쓰되 주된 밥벌이를 책 만드는 일로 하는 이 둘은 평소에도 막힘없는, 감출 것 없는 책에 대한 잦은 '수다'를 떨어왔다고 농담처럼 말해왔는데 실은 그 수다라는 '대화'가 얼마나 많은 '책'의 기획들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일상이 담긴 이 책'일기'를 보니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난다 펴냄, 399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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