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생명 의식 중시한 '약한 자의 버팀목'
변화 원한 시민 목소리 충실 보도
'홍준표 꼼수사퇴'연재 기사 호평
인재참사·미투운동 심층분석 눈길

독자와 지역사회에 유의미한 경남도민일보의 역사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세 가지 뼈대를 갖고 정리한 약사(略史)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언론으로 어떻게 성장해왔나, 지역사회에는 어떤 역할을 해왔나, 끝으로 독자와 어떻게 교감했고 어떤 평가를 받아왔나. 1999년 창간 전후부터 2018년까지 모두 10편으로 정리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은 이 문장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달력이 넘어가면서 대한민국도 뒤집혔다. 대통령답지 못한 대통령을 바꾸고 나라답지 못한 나라를 바꾸어야 한다고 일어난 촛불은 2016년 12월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을 끌어냈고, 직무가 정지된 채 새봄을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을 함으로써 취임 1475일 만에 물러났다.

이것은 변화를 향한 첫발이었다. 2017~2018년 연이은 선거에서도, 또 잇단 인재 참사, 약자를 향한 갑질, 그리고 미투운동에서도 '이제 진짜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은 타올랐다. 그 한가운데서 경남도민일보도 지역사회 곳곳을 조명하는 촛불이 되고자 했다.

▲ 2017년 4월 10일 0시 4분 경남도의회 앞에서 당시 박동식 경남도의회 의장이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사퇴서 접수 관련 발언을 하고 황급히 떠나는 모습./경남도민일보 DB

◇새 대통령 새 도지사, 그러나 우리가 주인이다 = 2017년 새해 기획을 '우리가 주인이다'로 정한 건 필연적이었다. 탄핵 선고가 남은 상황이었으나 결과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2항)는, 그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신년호부터 한 해 동안 △부조리에 맞서다 △1209 이후 비선을 이기는 시스템 △분권, 기초의회 바로 세우기부터 △소비자 주권 △나는 두 번째 감독 △1020청춘예찬 등 여러 연재기사를 실었다. 평범한 국민과 시민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임을 보여주는 기사였다.

주권 찾기는 선거 국면에도 이어졌다. 특히 인구와 권력, 돈이 수도권에 집중된 탓에 지역, 지역민이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 대선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선 '대선 속의 지방' 기획을 통해 한국사회 지방분권의 현주소를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고 대선에 반영되어야 할 분권 과제를 분야별로 도출했다. 나아가 후보들에게 직접 경남을 물었다. 원전 위협부터 창원산단, 무상교육, 창원광역시 승격, 소상공인 생계, 남부내륙철도, 4대 강 보, 김해신공항, 남해 EEZ 모래채취에 이르기까지 주요 도내 현안을 '대선 속의 경남' 기획에서 살펴봤다. 이어진 '후보자에게 듣는다'는 각각의 현안에 대해 후보가 어떤 판단과 해법을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답변을 비교했다.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도 다양한 유권자가 직접 후보에게 정책을 제안하는 '이런 공약 어때요'는 눈길을 끌었다. 일상의 자치, 생활 속 정치를 지역민과 함께 다져가는 발걸음이었다.

'우리가 주인이다'는 당시 독불행정의 상징이었던 홍준표 도지사를 향한 꾸짖음이기도 했다. 홍 전 지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3일 뒤에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문제는 사퇴 시점이었다. 보궐선거는 세금낭비라며 사퇴시한 3분을 남기고 사퇴서를 낸 것이다. 이 꼼수사퇴로 경남도는 1년 2개월이라는 최장기간 권한대행 체제를 맞게 됐다. 경남은 비난으로 끓어올랐다. 각계각층의 분노와 경고를 담아 홍 전 지사에게 책임감을 촉구하는 한편 법적으로 막을 방안은 없는지, 막을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인지, 대책을 찾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꼼수사퇴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 가장 많이 읽힌 기사에도 꼽힌 이 연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경남울산협회 기자상을 받았다.

▲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모습./경남도민일보 DB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 2016년 전국을 밝혔던 촛불은 작은 목소리가 모여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고, 사회 곳곳의 약자를 향한 갑질, 여성을 향한 성범죄를 드러내는 용기로 이어졌다. 경남도민일보가 더 부지런하게 뛰어야 하는 시기였다.

이때 유난히 인재 참사가 많이 발생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타워크레인 지지대가 무너졌고 일터를 덮쳤다.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다.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던 이들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기사는 위험의 외주화 비판에 무게를 실었다. 사고현장 르포, 현장노동자 인터뷰, 전문가 분석, 수사 과정, 법제화와 처벌까지, 80건에 이르는 기사를 실었으며 보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사고는 잇따랐다. 7월에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천에서 비가 오는 날씨에도 보수공사를 하던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이 급류에 휩쓸려 3명이 사망했다. 8월에는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선박 탱크 폭발 사고로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11월에도 창원터널 내리막길에서 제동장치 이상으로 화물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와 폭발로 번지면서 3명이 사망, 7명이 부상당했다.

2018년 1월 26일에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46명이 숨지고 109명이 다쳤다. 사고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졌고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대책 마련과 실태조사를 끌어냈다. 10월에는 김해 원룸 화재사고로 어린이 2명이 숨졌다. 반복되는 참사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도처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고 감시하는 데에 소홀하지 말라는 요구와 다짐도 반복됐다.

미투운동도 대한민국을 바꿔놓은 큰 전환점이 됐다.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 씨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당시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었으며 밀양연극촌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열여섯 살에 들어간 김해 지역 한 극단에서 대표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였다. 밀양연극촌 하용부 촌장도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다. 미투운동은 학교 내 차별과 폭력 문제로, 노동현장의 남녀 임금차별 문제로도 옮겨갔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고 넓게 퍼져있는 병이었다.

▲ 2018년 1월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 모습./경남도민일보 DB

그런 만큼 현상을 단순히 보여주기만 하는 보도에서 더 나아가야 했다. 당시 심층보도 기사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는 "단순한 성 문제를 벗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미투가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한다)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다른 학자는 "한국은 여성 인권에 관한 의식보다 법이 앞선 역설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일상적 차별 드러내기를 통해 의식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평소 경남도민일보의 관점과 맞닿아 있었다.

통영 위안부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이야기, 창원출입국사무소 폭행 단속, 농아인 상대 사기범죄,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인도네시아까지 찾아가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노동 문제를 취재한 '산재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기획 보도는 지역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논의를 계기로 나온 '강산 변해도 학생 인권은 제자리걸음' 기사도 지면평가위원회 기사상 대상으로 선정됐다. 당시 위원회가 밝힌 기사상 선정 이유는 조례 제정 찬성·반대 갈등이 정점에 이른 지금 다시 돌아볼 만하다. "경남도민일보다운 기사다. 과거 조례제정 경과와 현재의 화두를 잘 설명했다. 관련한 논쟁이 학업성적이나 성 정체성 문제, 교사와 학생의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무엇을 토론해야 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기사다."

2017년과 2018년을 지배했던 '이제 진짜 바뀌어야 한다'는 자각은 2019년에도 유효하다. 경남도민일보가 앞으로도 주권과 인권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고, 약한 자의 곁에 서야 하는 이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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