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포함된 5월을 보내면서 상기해야 할 이들이 있다. 한국 사회 어딘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존재. 생명 활동은 하고 있지만, 사회적 생명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존재. 부모와 한날한시에 체류 자격이 사라지거나 어디에도 출생이나 생존 기록이 있지 않은 미등록 이주아동을 말한다.

국적 제도에서 속인주의를 취하는 한국은 부모의 국적에 따라 자식의 국적도 자동으로 정해진다. 그러므로 외국인 자녀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더욱이 한국은 미등록 초과체류자의 자녀에게도 부모의 신분을 대물림하게 하는 나라이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을 1만 7000명으로 대략 추산한 바 있을 뿐 정확한 통계조차 나온 바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보육이나 교육, 의료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으며, 중등학교까지 다닐 수는 있지만 심각한 교육 결손 계층으로 짐작된다. 미등록 이주아동 중 부모가 본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무국적 이주아동은 인권 상황이 최악인 경우로서 유엔난민기구는 국내에서 출생한 무국적 아동을 최소 30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주아동의 등록과 국적 취득 권리를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하고, 국적을 가져야 한다. 국제법은 국내법의 상위법이므로 초과체류자 자녀의 국내 출생등록 등을 거부하는 정부는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셈이다.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정부에 부모의 법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과 동등한 교육 접근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18·19대 국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입법 노력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좌초되었다. 20대 국회에서는 원혜영 의원 등이 이주아동에게 국내 출생신고를 허용하는 가족관계 관련 법률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초과체류 외국인 자녀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할 경우 법질서 훼손이나 국민에 대한 역차별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기우라고 본다. 어린이를 무권리의 존재로 방치하는 것만큼 참담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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