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난 뒤 벌컥벌컥…그 맛이 최고"
작품 곳곳 등장…주인공도 즐겨
무력·상실·고독감 채워준 존재
재료·레시피 인터넷으로 구매
자신만의 수제맥주 도전 가능

"맥주 나라에 가면 나는 필시 VIP급 국빈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모량만 해도 굉장하고, 소설 속에서도 꽤 맥주를 지지하고 선전해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맥주 애호가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도 맥주를 즐겨 마신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하루키는 특히 "달리기 후 땀 흘리며 마시는 맥주가 제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유명 일화도 있다. 일본의 한 광고회사 직원은 하루키에게 맥주 광고를 의뢰하고자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고. 이후 그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용을 인용해 삿포로 맥주 광고의 카피라이팅을 했다.

▲ 벨기에 스타일 밀맥주인 윗비어. 플라망어 윗(Wit)은 영어로 화이트(White)와 같다.

◇공허함을 채워주는 존재 = 하루키 작품에는 음식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요리에 관심이 많고 음식 솜씨 또한 좋다. 하루키의 인터넷 공식 팬사이트 춘수당에 따르면 독자들이 뽑은 그의 작품 속 베스트 음식 1위는 스파게티, 2위 햄버거, 3위가 도넛이며 주류로는 맥주가 1위로 뽑혔다.

하루키 작품 속 음식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의미가 아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에게 맥주는 무력감, 상실감, 고독감을 채워주는 존재다.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년)에는 절반 이상의 장면에 맥주가 등장한다.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지, 전부 소변이 되어서 나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일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하루하루의 거품 같은 것뿐이야. 하나의 시궁창 물을 다른 시궁창으로 옮긴다. 그뿐이야."

맥주는 <태엽 감는 새>(1994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2011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2013년) 등에도 등장한다.

"기록이야 어찌 되었든 42㎞를 다 뛰고 난 뒤에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마시는 맥주의 맛이란 그야말로 최고다. 이 맛을 능가할 만큼 맛있는 것을 나는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러나 대개 마지막 5㎞ 정도는 '맥주, 맥주'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달리게 된다. 이렇게 가슴속까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42㎞라는 아득한 거리를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떨 때는 너무 잔인한 조건인 듯 싶게 느껴지고, 어떨 때는 지극히 정당한 거래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중)

하루키는 맥주와 함께 어떤 안주를 즐겨 먹을까.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맥주 안주를 알려주세요"라는 독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연근을 얇게 썰어서 식초를 탄 물에 잠시 재워둡니다. 떫은맛을 빼는 거죠. 그리고 종이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합니다. 소금 후추를 뿌립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열한 다음, 가볍게 튀깁니다. 취향에 따라 고추를 넣습니다. 그리고 곤약 볶음을 자주 만듭니다만, 이건 설명하자면 좀 번거로워서 생략합니다."

▲ 맥주 소믈리에 이유정 씨가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다.

◇기다림의 시간 = 공유공간 293 주인 이유정(47) 씨는 맥주 소믈리에다. 그는 독일 대표적인 맥주 교육기관인 되멘스의 비어소믈리에 등 3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맥주 소믈리에는 맥주의 맛을 평가, 관리하는 사람으로 때와 장소에 맞는 맥주를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씨는 현재 공유공간 293에서 수제 맥주 만들기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맥주에도 먹는 방법이 있다. 눈으로 먼저 보고 코로 향(aroma·아로마)을 맡고 나서 입으로 맛과 향(flavor·풍미)을 느끼는 거다"고 했다. "입으로 향을 어떻게 느끼느냐"고 물으니 그는 "맥주를 마시면 비강을 통해서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수제 맥주는 마트에서 파는 맥주와 무엇이 다를까. 이 씨는 "효모가 살아있다"며 "마트서 파는 맥주는 빛, 산소, 열에 운반 과정에서 노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수제 맥주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그리고 "페일 에일에 홉을 다량으로 넣은 IPA 맥주는 직접 만들어 먹으면 시중에서 파는 맥줏값에서 3분의 1 정도 절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맥주에는 물, 몰트(싹이 튼 보리나 밀로 만든 맥아즙), 홉, 효모, 부가물이 들어간다. 이 씨와 함께 '벨지안윗'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벨지안윗은 벨기에식 밀맥주다. 호가든과 비슷하다.

이 씨는 "벨지안 윗비어(witbier)는 상쾌하고 우아한 밀 베이스 에일이다"며 여름철 먹기 좋은 맥주라고 추천했다. 맥주에 오렌지필과 코리앤더시드가 들어가 상쾌하고 기분 좋은 신선함이 느껴지는 게 특징. 수제 맥주 재료는 인터넷으로 구매 가능하며 레시피도 함께 오니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 스타일을 선택하면 된다. 이날은 초보자를 위한 맥아추출물 통조림을 이용하는 '부분 곡물 방식'으로 만들었다. 수제 맥주를 만들려면 별도로 끓임통, 칠러(chiller·냉각수가 흐르는 장치), 온도계가 있어야 한다.

수제 맥주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맥주 종류에 따라 소요 시간은 다르지만 '벨지안윗'은 20리터 만드는 데 2~3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2~3주 지나면 자신만의 손맛이 들어간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 씨는 벨지안윗에 맞는 음식으로 오렌지 샐러드와 두부, 해산물을 추천했다.

※참고문헌

논문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속의 음식 고찰: 그 역할과 의의에 관하여>(2004), 민경애, 한국외국어대


▲ 벨지안 윗 수제맥주 제조 과정

■ 벨지안 윗 수제맥주 만드는 방법

① 물 10리터를 70℃까지 데운 후 불을 끈다. 곡물(필스너 몰트와 오트밀)을 곡물망에 넣고 따뜻한 물속에 넣는다.

② 30분 정도 차 우려내듯 액즙을 우려낸 후 곡물망을 건져낸다.

③ 맥아추출물 통조림(액상몰트)을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저어준다. 워트(몰트의 당분이 우러난 액)의 양을 20리터로 맞추어준다.

④ 그다음 끓여준다. 끓기 시작하면 홉 스케줄에 맞게 홉을 넣는다.

⑤ 1시간 끓인 후 칠러를 이용해 워트를 식힌다.

⑥ 워트 온도가 28℃ 이하가 되면 발효조에 넣는다. (비중을 재고 체크한다)

⑦ 발효조에 효모를 뿌리고 뚜껑을 닫는다. 효모를 넣고 젓지 않는다.

⑧ 에어록을 설치하여 빛이 없는 시원한 곳에 7~10일 놓아둔다. (적정온도 20~25℃)

⑨ 발효가 끝나면 맥주 1리터당 설탕 7g을 넣고 발효가 끝난 맥주 원액을 넣는다. 탄산화를 시킨 후(7~10일 정도) 병이 단단해지면 냉장고에 넣는다.

▲ 벨지안 윗 수제맥주 제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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