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에서 성숙 검증됐는데도
통제·차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어른들

별이 번쩍하며 튕겨나가 떨어진다. 통증은 그다음이다. 얼굴을 덮을 만큼 큰 손바닥으로 아이 뺨따귀를 휘갈기는 건 예사였다. 떠들었다거나 복도에서 뛰었다고…. 좀 컸을 땐 매타작도 흔했다. 지도와 훈육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가한 폭력이었다. 학교와 군부대 구조는 판박이다. 내무반과 마주한 연병장, 그리고 사열대. 학교는 통제를 위한 구조였고, 학생은 통제 대상이었다.

체벌금지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지난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1996년 한국 정부에 처음 권고한 이후 2008년에야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보장'이 명시됐다. 이어 2011년 도구나 신체를 이용한 직접체벌을 금지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됐다. 그러나 인권 인식은 덜 여물었다.

"조례가 미성년자로서 배움의 대상인 학생에게 과도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교사의 지도수단을 허물어뜨려 갈등을 일으키는 단초도 마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규석 도의원이 지난 15일 도의회 교육위원회 심의에 오른 경남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 반대하면서 한 말이다. 그날 찬성 3, 반대 6명으로 조례안은 부결됐다. 민주당 소속 2명의 반대표가 좌우했다.

민주당의 당정체성을 밝힌 강령 '성평등·사회적 약자·소수자' 부분을 보면 이렇다. "여성, 아동, 청소년, 어르신,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어떠한 차이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강령에 밝혀놓고도 도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도당은 조례안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물론 교육열에 학업성취도는 높지만 행복지수는 낮아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복잡하게 꼬여있다. 그럼에도 통제와 차별을 깨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조례를 지지하는 청소년들은 도의회 심의를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측이 자신들을 '미성숙한 존재', '선도해야 할 존재'라고 칭하고, 그래서 학교현장에 여전히 교사들의 강한 지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비판했다. 지난해 학생인권조례 공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이들은 어른들이었다. 참석한 학생들은 고성을 지르며 토론을 막은 어른들의 미성숙을 다 지켜봤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주장은 18세 참정권 논쟁과 닮은꼴이다. 3·15의거, 4·19혁명의 주역은 학생들이 아니었던가. 이미 민주주의 역사에서 청소년들의 성숙함은 검증됐다. 청소년들은 '선거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외쳐왔지만 여전히 투표권 하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표세호.jpg

인터넷 중계로 도의회 교육위 심의 과정을 지켜봤던 한 교사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인권 문제가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인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말은 아닐 테다. 학생인권조례 핵심은 '자유와 존중은 있고 차별 없는 학교'다. 학생은 학교와 교육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 또한 어른이랍시고 아이들을 짓누르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