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민 전 마산용마고 총동창회 사무총장 인터뷰

창원 고교야구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산용마고(옛 마산상고) 야구부. 전국적으로도 이름난 마산용마고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컵은 한 차례도 들지 못했다. 경남고나 휘문고, 광주제일고, 장충고 등 다른 명문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 하지만 그 누구도 마산용마고를 명문 반열에서 제외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마산용마고가 명문 야구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변종민(59) 전 마산용마고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한국 야구에 이름을 깊게 새긴 모교 출신 선수'를 그 이유로 꼽았다.

"초창기는 이호헌을 빼놓을 수 없죠. 1949년 쌍룡기 쟁탈 전국고교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선수단을 이끌었던 그는 졸업 후 한국 야구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웠어요. 기록 보편화에 앞장섰고 프로야구 탄생을 견인했죠. 1981년 프로야구 창립계획안을 만들어 고교 동창인 우병규 전 정무제1수석과 청와대를 들락거린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 변종민 전 마산용마고 총동창회 사무총장. /이창언 기자

1960년대 재건한 마산용마고 야구부는 전국체육대회 우승,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따내며 반등을 맞기도 했다. '메이저대회 우승'은 끝내 없었으나 고개 숙일 필요도 없었다.

"김차열이란 스타를 배출했죠. 18회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감투상과 타격상을 받기도 했던 김차열은 훗날 실업야구를 풍미하는 선수가 됐고요."

197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우승컵은 안지 못했으나 김용일(26회 황금사자기 미기상), 이효헌(30회 청룡기 타격상), 임정면(30회 황금사자기 타격상) 등은 한국 야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나서도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1983년 유두열·박영태·한문연이 롯데에 입단하며 모교 위상을 높였고 박동수·공필성·장원삼·조정훈·정훈·김민우 등이 뒤를 이었죠."

물론 메이저 우승을 '한'으로 여기는 동문도 있다. 그들에게 변 전 사무총장은 최근 10년을 주목하라고 당부한다.

"5~6년 사이 지역팀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대회 4강 이상에 수시로 얼굴을 비쳤어요. 프로선수 배출도 매년 이어왔고요. 오늘날 고교야구는 성적과 지역 야구 발전 기여도, 프로 진입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마산용마고는 진짜 전성기를 맞은 것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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