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진 일해야 한다는 신념의 노인
변하지 않겠다고 해도 세상은 바뀌는데

우리 동네 박수오 씨는 여든네 살이시고, 아직도 농사를 지으며, 처절하리만치 부지런하고 80평생토록 변함없이 논밭에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노동으로 보낸다. 그분은 나름의 신념을 갖고 계신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곧 죽는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상황, 즉 84세인 데다 지팡이를 짚거나 자전거에 의지하지 않으면 허리가 기역 자로 굽어져 거의 코가 무릎에 닿을 정도다. 농사를 안 지어도 될 만큼 살림살이도 여유 있는 데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제 좀 편안하게 지내시라고 자주 권할 만큼 효행심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일손을 놓는 순간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이른 아침에도 그는 참깨를 심은 밭에서 주전자에다 물을 넣고 밭이랑에 덮어씌운 검정 비닐 피복의 작은 구멍에 물을 붓고 있었다. 며칠째 여름같이 햇볕이 따갑고 기온이 오르자 엊그제 심은 밭곡식들이 가뭄 피해를 볼까 걱정해서다. 그 밭은 자기 땅이 아니다. 그 밭 말고도 다섯 군데나 남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 그의 신념은 늙어도 죽기 전까지는 일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을 노인회관에 놀러 가거나, 또는 단체로 구경 가는 일에도 거의 관심이 없다.

그는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좋다고 여긴다. 이 신념을 바꾸게 되면 어떻게 될지가 두렵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져 먹은 뒤로 후회해본 기억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가 신념을 유지하는 나름의 방법도 있다. 자신의 신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이에게는 일단 화를 내어 소리친다. 너나 잘하라고. 가족, 이웃과 호기심을 가지고 상대편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늘 자신의 일과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틀렸다고 하는 사람한테는 무섭게 달려든다. 언젠가 그가 일하는 밭을 지나가다가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나는 유럽의 몇몇 농업국가에서는 농부들도 65세에 은퇴를 하며 은퇴한 뒤에는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며 삶의 보람을 누린다는 얘기였다. 그가 보인 반응은 간단했다. "그 사람들 나중에 굶어 죽게 되면 나라가 먹여살려줄까?" 국가든 정치든 학교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떤 것들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번도 믿음을 주었거나 오래 지속된 믿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데 왜 남의 일을 걱정하듯 하면서 우려먹고, 속이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던진 말 한마디는 나에게 깊고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사는 젊은 부부 얘기였다. 연예인들을 걱정하거나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고 국회의원이나 검찰 등을 걱정하는 그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되도록 많이 놀면서 맘껏 돈을 쓰고 실컷 먹고 자는 것이 아니냐고. 그중에서도 정치인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안 바뀌기 때문에 잘 사는 사람들 아니냐고. 따라서 그도 변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좀 어지러운 대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가 곧 창조이기 때문이며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변화의 가장 선명한 증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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