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아가는 도심형 협동조합
농촌에도 벌과 돌볼 이가 필요해

아카시아꽃이 핀다. 정확히는 '아까시'라는데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하면 서운하듯 아카시아가 그렇다. 동구밖 과수원길이 사라졌어도 아카시아향기는 어딘가에서 실바람을 타고 솔솔 날아온다. 4월에는 보랏빛 등나무꽃이 향기로운 벤치를 서성이다 밀원을 찾아온 꿀벌의 날갯짓을 들었다. 평소 잘 보이지도 않는 벌들이 이맘때면 밀원의 소재를 기막히게 찾는 것도 신기한데, 등나무, 아카시아처럼 작고 수수한 꽃의 쓰임을 입증하듯이, 점점 애물덩이 취급받는 아카시아를 꿀벌이 진정 사랑한다는 사실이 고맙고 다행스럽다.

아카시아가 필 때는 벌도 유순해진다. 따시고 배부른데 바쁘기까지 하니 잘 쏘지 않는다고, 지난 11일 꿀벌의 '농번기'를 택해 우리를 초대한 의령농부가 알려주었다. 그날 땡볕에서 현장학습을 하다 구여왕과 신여왕이 한 집에 공생하는 '진귀한' 현장을 목격했다. 그 무렵 나는 창원에서 지인들과 도심형 인문·문화공동체-지혜마실협동조합을 만들어 분주했다. 2014년부터 1년간 매월 모여서 공부하며 준비했지만 막상 만들어진 지혜마실은 백색 도화지였다. 지혜마실이 관의 지원 없이 버틴 것은 조합원들이 가능한 수준에서 운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는 수익사업을 그만두자 지혜마실의 자리가 더 명확해졌다. 이웃과 엮이는 도시의 일상적인 문화공동체.

이 마실장터에 꿀을 내는 소중한 조합원이 의령농부다. 우리는 매년 그와 그의 '군사'들이 생산한 꿀을 기다린다. 가끔 그는 농사지은 제철 채소나 홍시상자를 마실에 가져온다. 마실에 들른 조합원들이 챙겨가고 남으면 솜씨 좋은 조합원들이 요리를 한다. 멀리 남해나 합천에 사는 조합원 부모나 지인들이 마실장터에서 농산물을 팔았다고 고구마나 호박을 보내기도 한다. 4년간 이런 마실의 풍경을 적이 경이로운 심정으로 보아왔다. 20여 년 만에 귀향해 낯설었던 창원에 '시민인 주민'으로 안착하게 된 것은 지혜마실 덕분이다. 마실이 없었으면 마을·공동체에 관한 생각은 책에서 읽은 피상적인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의령농부는 나와 반대 케이스이다. 그는 직업군인을 관두고 귀향해 노모를 모신다. 농촌의 공동화, 낙후된 행정, 관의 비현실적인 농촌 정책을 개탄하는 열혈 청년(?)이셔서 도시인인 우리에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농촌현장보고서이다. 의령에도 마실 같은 곳을 만들고 싶은데 사람도 돈도 없다고 아쉬워하더니, 현장학습날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웬 휘황찬란한 기획안을 보여주신다. 국토부에서 40억 원을 들여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를 리모델링해 마을문화복지센터를 만들어준단다. 얼떨결에 추진위원장 감투를 맡고 보니 컨설팅업체가 만든 온갖 프로그램을 주민이 '알아서' 해야 하는 2년 후가 걱정이라시기에 예산 일부를 운영비로 돌리든지 예산을 더 따라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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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라니, 이 '적막한' 마을에서 어떻게? 그의 벌에겐 아카시아와 그가 있다지만 마을엔 아무것도 없다. 대체로 관의 사업이 컨설팅해주고 건물 지어주면 끝이다. 그러나 농촌은 지혜마실처럼 조합원들이 몇 년간 길을 모색할 여건이 허락되는 도시가 아니다. 농촌의 마을만들기는 무엇보다 그곳에 '거주'할 벌을 먹일 밀원을 심고 돌볼 이를 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예산 낭비요, 전시행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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