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독립운동가 찾고 기억하며 '의열 정신' 이어가
연구소 '을강 전홍표' 찾아내 지난해 건국공로훈장 수훈
독립운동사 청소년 교실·뮤지컬 제작…회비·기부금 운영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에 더해 의열단 창단 100년까지 올해 '독립운동 성지 밀양'이 한껏 부각되고 있다. 밀양이 독립운동 성지가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온 단체가 있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다.

지난 7일 밀성제일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이하 '밀독연') 윤일선(62·밀성제일고 교장) 소장과 장종완(44·태화출판인쇄 대표) 사무국장을 만나 밀독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지난 7일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윤일선(왼쪽) 소장과 장종완 사무국장을 밀성제일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만났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밀독연은 밀양지역 독립운동사를 올바로 연구하고 선열들의 발자취를 후손에게 전하는 교육 활동을 담당하고자 창립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지역 유공자 서훈 신청, 독립운동사 회보 발간, 독립운동사 학술대회, 학생들의 국외 항일전적지 답사와 심화 교육 등을 기치로 내걸었다.

윤 소장은 "창립 발기인은 12명이었고 개소식 때는 40여 명으로 회원이 늘었다고 들었다. 초대 소장은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밀양 역사와 문화를 많이 공부하신 손정태 현 밀양문화원장이 맡았다"고 말했다. 이어 "밀양은 독립운동을 한 인원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한 사람이 많다. 의열단 창단 멤버 구성이 약산 김원봉 단장을 비롯해 밀양 사람이 많았다. 그 외에 윤세복 제3대 대종교 교주가 만주 쪽에서 학교를 만들고 교육사업을 했다. 임시정부 수립 때 김대지 선생 등도 참여했다. 독립운동 관련한 '거리(유의미한 소재)'가 많은 곳이 밀양"이라고 밝혔다.

밀독연이 지난 11년 동안 핵심적으로 해온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독립운동가 발굴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을강 전홍표 선생이다. 전홍표 선생은 밀양의 옛 군관청(군관들 집무소로, 현 밀양택시 주변으로 추정) 터에 설립된 동화학교 교장으로서 일제 억압 속에서도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교육을 해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 밀독연의 발굴로 2018년 3월 건국공로훈장(건국포장)을 수훈했다.

두 번째 사업은 나라사랑 정신과 의열정신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교육 활동이다. 수능 시험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찾아가는 독립운동사 교실'을 연다. 이어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뮤지컬 만들어 공연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항일 독립운동지 역사 탐방'도 뜻있는 사업이었는데, 지난해 여름부터 끊겼다. 약산장학회 김태영(약산 김원봉 장군 조카) 회장이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줘서 역사 탐방을 했으나 지금은 후원받지 않고 있다. 밀양시·밀양교육지원청과 연계 사업을 해보려 했으나 잘 성사되지 않았다.

▲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는 매년 수능을 본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을 주제로 뮤지컬을 만드는 교육을 한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세 번째로 최근 밀독연이 성과를 낸 일은 밀양초교(옛 밀양공립보통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명예졸업장 추서이다.

명예졸업장은 지난 2018년 2월 김원봉, 올해 2월 김상득·한봉삼 선생 등 3명에게 수여했다. 명예졸업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이기종 전 밀양초교 교무부장과 최필숙(56·밀양나노마이스터고 교사) 밀독연 부소장 도움이 컸다. 이들은 학교 자료를 모두 뒤져 3·13 밀양 만세운동 당시 밀양공립보통학교 전교생(1~4학년) 160명의 졸업대장을 확인한 결과 140명이 3·13 밀양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1919년엔 한봉삼 선생을 포함한 학생 59명 중 아무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으며, 다음해에는 38명 중 5명, 그 다음해에는 35명 중 8명만 졸업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밀독연은 지속적으로 입학 기록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해 졸업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2018년 개관한 의열기념관도 밀독연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6년 의열기념관 터 매입 전부터 개관까지 내부 콘텐츠를 채우는 일을 밀독연 회원들이 도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구대 사학과 김영범 교수와 최필숙 부소장이 자문을 많이 해줬다.

올해 전국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약산 김원봉 장군 서훈 문제는 밀독연으로선 어렵고 힘든 부분이다.

윤 소장은 "김원봉 장군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길이 있으면 좋겠다. 정치 이념 문제가 걸려 있지만, 밀독연이 큰 힘이 안 되더라도 어쨌든 목숨 바친 공을 제대로 인정하도록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밀독연이 개소하고 김원봉 장군 서훈을 2번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과(功過)가 있다면 과도 알리면서 공도 인정해주면 좋겠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당연히 없어질 갈등인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숙제"라고 판단했다.

밀양시가 밀양을 독립운동 성지로 브랜드화하고 전국 명소화하려는 취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윤 소장은 "유산은 물질적 유산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유산이 더 중요하다. '의열'은 밀양뿐 아니라 누구든지 가져가야 할 정신이다. 밀양의 유형 자산은 항일 테마거리, 의열기념관, 시립박물관 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등 기존 자산이 많지만 '거리'에 비해 시설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발굴해야 할 자산으로는 3·13 만세운동 때 등사기로 태극기를 만들던 장소인 아곡산 광산 자리를 꼽았다.

밀독연 3대 소장인 윤 소장은 올해 3월 연임돼 오는 2020년까지가 임기다. 윤 소장은 "원래 밀독연 존재도 몰랐다. 윤세주 열사 후손이고 하니 주변에서 권해 소장을 맡았다. 선친과 윤세주 열사가 10촌이다. 늦었지만 공부를 더 하면서 의열정신이라도 후세에 알려야겠다, 나한테 주어진 사명감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소장은 "밀독연은 일반 봉사단체와 명칭부터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회원 전부 주업이 있는 분들이라 전문 연구소로서 역량이 부족하다. 또 회원 80~90명이 회의를 해서 결집 의견을 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면서 "정치적 이념 갈등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연구소가 해야 할 일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2016년 개최한 밀양독립운동 선양 학술 세미나 모습.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밀독연은 전체 회원이 90명이다. 이중 10여 명은 무료 회원이며, 80여 명이 월 1만 원씩 회비를 낸다. 소장·부소장·사무국장이 있고 이사가 10명가량 있다. 소장은 회원들이 추대해서 총회에서 선임한다. 장종완 사무국장은 "밀독연은 연간 1000만 원 정도로 운영한다. 기부금도 받지만 일반적 기부보다 목적 사업(탐방, 학술대회, 독립뮤지컬 제작 등)에 기부하는 형식"이라고 밝혔다. 또 "연 1회 학술강연회나 세미나를 하면 독립운동가를 1명씩 조명하는 책자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양시는 올해 의열단 창단 100년을 기념해 오는 11월 10일 기념행사를 할 예정이다. 밀독연도 행사를 도울 계획이다. 과거 밀독연이 밀양을 독립운동 성지의 토대를 마련한 마중물이었다면 미래의 밀독연은 밀양을 세계적인 독립운동 메카로 만드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