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었든 새롭든 가자 진짜 고향으로

인디 가수라고 해서 밤낮으로 기타만 뚱땅거리며 노래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먹어야 똥이 나오듯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고 느끼고 배울 거리가 필요하다. 유튜브 같은 데에서 요새 유행하는 음악스타일을 좇는 것도 좋지만 다큐도 보고 책도 읽으며 역사와 세상에 대한 교양도 열심히 쌓아야 한다.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유료 영상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서비스를 한 달 무료로 체험해보려다 탈퇴신청을 깜빡하고 한 달을 유료로 더 보게 되었다.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다. 이왕 돈 빠져 나간 거 열심히 보자 싶어 거기 올라와 있는 영화들을 쭉 훑어보았는데 딱히 볼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 몇 편은 제법 볼 만했다.

최근에는 2007년 미국 공영방송(PBS)에서 켄 번스(Ken Burns)가 제작한 <전쟁(The War)>이라는 다큐멘터리 연작을 보았다. 7부작으로 구성된 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미국 소도시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 지역 출신의 군인들이 2차 세계대전을 일상에서 또는 전장에서 어떻게 겪게 되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여타의 전쟁다큐영화와 달리 전쟁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더욱 호소력이 있다.

▲ 조부모가 생전에 지내시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어느 계곡에서. /김태춘 시민기자

그와 함께 노라 존스(Norah Jones), 요요마(Yoyoma)의 것에서부터 베니 굿맨(Benny Goodman), 듀크 엘링턴(Duke Elingtone)같이 그 당시를 대표하는 재즈 음악이 흑백영상과 잘 섞여 있다.

흑인과 백인, 미국원주민과 일본계 미국인 등 전쟁에 대한 각기 다른 경험들이 소개되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얘기하던 것은 '홈(home)'이라는 것이었다. 스무 살도 안 된 젊은이들이 전쟁의 참혹한 상황 속에서 '홈(home)'을 그리워하며 가족의 사진, 친구들의 편지를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당시에 군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we will meet again)'란 노래가 널리 불렸던 데는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어디서일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맑은 어느 날, 우리는 만나게 될 거야

(중략)

그러니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줘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베라 린(Vera Lynn)

홈(home)이라는 것은 집, 가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넓게 보면 그 집과 가정이 있는 고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듯이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내가 만난 서울 사람 중 몇몇은 '너는 좋겠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들도 자기가 자란 동네를 열띠게 떠올리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분명 돌아갈 곳이 있는 게 틀림이 없다. 그래서인지 국적을 불문하고 이 세상 많은 가수가 그들의 고향을 노래해 왔다. 그들에게 고향이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잔잔한 바다와 고향 동무가 있는 곳이고, 어릴 때부터 멀찍이 봐왔던 산과 강이 있고 별별 추억이 녹아 있는 곳. 맨날 똑같은 노래만 틀어도 지겹지 않은 주점과 약속 없이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는 곳이다.

시골길아

나를 데려다줘

내가 속한 집으로

웨스트 버지니아

산골여인아

나를 데려다줘

시골길아

-존 덴버(John Denver)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공연을 하거나 시디를 팔기 위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나의 사투리 억양을 듣고는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했다. 고향, 어디라고 해야 되나, 태어난 곳을 말해야 되나, 학교 나온 곳을 말해야 되나, 아니면 일하는 곳을 말해야 되나 늘 헷갈려서 그때 그때 대충 얼버무렸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몇 년을 산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돈벌이도 많고 기회의 땅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서울은 대체로 춥고 외로운 곳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MBC 주말연속극 <서울의 달>에 나오는 어두운 골목에 고개 숙인 춘섭이의 뒷모습처럼 '눈부신 네온 불 밑에서 두 눈이 멀고 서울의 빌딩 숲 밑에서' 길을 잃고 방황을 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서울과 서울사람들을 괜히 원망하기도 하고 오밤중에 술을 먹고 청승맞게 고향생각을 부르며 혼자 울적해 하기도 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처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내 동무 어데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제명 <고향생각>

▲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마산 앞바다.

물론 그중에 좋은 시간도 있었다. 평양냉면도 배터지게 먹고 약간의 돈도 벌고 사랑도 하면서 어떤 때는 밝은 미래를 품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살이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향수병의 고약한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오게 되었다. 용달차를 타고 바라보는 산과 바다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자주 찾던 그 가게도, 그 가게 주인도, 심지어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들도 편하거나 익숙하지 않았다. 그토록 돌아가려던 고향에 왔건만 나는 그저 한 명의 이방인일 뿐이 아닌가. 그제서야 나에게 고향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고향이란 것은 내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이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온기를 나눌 수 없다면 나는 '홈(home)'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터지는 포탄을 피해 참호 속의 차가운 흙바닥 위에 잔뜩 움츠려 있는 병사일 뿐이다.

지금까지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과 고향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에 관해 얘기해보았다. 자, 이제 모두 자신이 속한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사과 한 알, 초코파이 하나라도 선물해보자. 그리고 진심을 담아 따뜻한 말 한마디, 문자메시지 한 통 건네 보자.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이나 고향이 진절머리가 나서 떠나온 사람에게는 아마 잘 와 닿지 않는 얘기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다 좋다. 오래된 고향이든 새로운 고향이든 각자의 고향을 찾아서 1루와 2루를 돌고 3루를 지나 홈(home)으로 런(run).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