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그림자 아래 나약한 인간상
소련의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스탈린의 억압에 무력해지는 내면
체제와 타협하며 예술적 신념 지켜

당신은 소련의 천재 작곡가다. 그런데 스탈린이 한 날 당신의 작품을 보다가 도중 나가버렸다. 이틀 후 관제신문에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혹평이 실린다. 지난 2년 동안 해외 곳곳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던 당신의 작품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교활한 재주로 장난치는 행위는 끝이 대단히 안 좋을 수 있다"며 일신의 위협까지 받는다. 당신은 아직 서른이 채 안 되었고 당신의 아내는 임신 5개월째다. 예술가로서, 가장으로서, 당신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겁에 질린 채 사는 작곡가로? 아니면 죽은 작곡가로?

<시대의 소음>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 관한 소설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썼다. 그는 엘리자베스 윌슨의 <쇼스타코비치: 기억되는 삶>과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 쇼스타코비치 회상록>을 참조해 글을 썼다.

<시대의 소음>은 맨부커상 수상 이후 발표한 첫 소설로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평범한 한 인간의 삶을 내밀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작가는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굴곡진 인생을 세 부분으로 나눠 조명한다. 1936년, 1948년, 1960년 쇼스타코비치가 윤년마다 겪었던 비극을 담았다. 1장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혹평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2장은 소비에트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으며 선전용 인사로 활용되었을 때, 3장은 흐루쇼프 시절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당하게 됐을 때다.

"그들은 언제나 오밤중에 데리러 왔다. 그래서 잠옷 바람으로 아파트에서 끌려나가거나 거만하게 무표정한 얼굴을 한 NKVD(내무인민위원회) 요원 앞에서 옷을 입게 되느니, 그는 옷을 다 차려입고 담요에 누워 벌써 다 꾸린 작은 여행 가방을 옆쪽 바닥에 두고서 잠을 청했다."(28~29쪽)

"그들은 공포가 먹힌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어떻게 먹히는지도 알았지만 공포가 어떤 느낌인지는 몰랐다. 흔히들 하는 말로, '늑대는 양의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94쪽)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중략)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 변명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 다른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227쪽)

▲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생전 모습. /창원시향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평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체제에 순응해 살아간 작곡가 혹은 반스탈린 메시지를 음악으로 은밀히 표현한 작곡가(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따르면 교향곡 5번을 소련 공산당이 찬양한 것은 블랙코미디였다고)다.

<시대의 소음>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가족을 지키려고 적당히 체제와 타협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표현된다.

책을 덮으며 자신에게 묻는다. 권력층 그림자 아래에서, 겁에 질린 채 사는 작곡가로? 아니면 죽은 작곡가로? 무엇을 선택했을까. 양심은 항상 더 많은 용기를 보여줘야 하지만 쉽지 않다.

다산책방 펴냄, 560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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