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고 사는 방법, 합창으로 터득할 수 있어"

장기홍(79) 지휘자는 음악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기기보단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는 거절을 모른다. 음악을 사랑하니까, 합창을 '조금' 아니까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면 어디든 간다.

그는 '합창 전도사'다. 우리나라 첫 고등학생 남녀혼성합창단을 만들었고 우리 지역 청소년 합창활동의 붐을 일으켰다. 지난 2004년 최종성·박홍렬·김경선 등 3명과 함께 우리 가곡 부르기 운동을 전개했고 지금까지도 가곡 부르기를 지도하고 있다.

▲ 장기홍 지휘자는 합창에 관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합창은 수용과 화합의 결과물이다 = 장 지휘자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틈틈이 공부했다. 그가 교직에 몸담게 된 것은 이수인 작곡가 제안 덕분이다. 군 생활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마산고 동창인 이 씨가 "학교 수업 좀 해줄래"라고 부탁했고 그게 인연이 돼 구산중학교서 2년간 일했다. 이후 마산중앙중학교서 10년간 일하다가 36살이던 1976년 그만뒀다.

이유를 묻자 "실력이 없어서"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아이들도 좋고 가르치는 일도 좋은데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적응을 잘 못했어요."

그는 레슨을 해서 먹고살았다. 그리고 합창단을 만들고 지휘를 맡았다. 진해시립합창단 창단 지휘·남성합창단 복 있는 사람 창단 지휘… 20개가 넘는다.

합창단 단원은 전공 불문, 나이 불문이다. "전공자들과 함께 연습하면 사실 편해요. 금방 악보도 보고 하니까. 평균 73세인 할머니, 할아버지 합창단은 파트 연습 한 번 하면 한두 달 걸려요. 그리고 뒤돌아서면 또 잊어버려요. 재밌죠.(웃음) 그분들에게는 적어도 하모니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모니의 맛을 보면 뭔가… 그 멜로디에 다른 음을 넣으려는 의욕이 생겨요. 일단."

합창의 매력이 뭐냐고 묻자 장 지휘자는 우선 목부터 축였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이야기하면 밤을 새워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되묻기까지 했다.

"합창을 하려면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모이면 어때요? 생각이 같아져요. 그다음, 생각이 같다고 해서 똑같은 음을 내나요? 파트별로 다 달라요.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면 그게 곧 하모니가 되고 하모니가 이루어지려면 파트별로 정확히, 그리고 잘해야 합니다. 거기에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잘하는 사람 까불면 안 돼요. 못하는 사람 기죽어서도 안 돼요. 얼마나 멋져요. 우리나라, 합창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회든 조직이든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만들려면 누군가는 양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잘났다고 튀기보단, 혼자 못났다고 위축되기보단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는 사람들이 모여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면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는 장기홍 지휘자.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리더는 행동으로 말한다 = 지휘자는 소리와 마음을 이끄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가 '절제와 조화'를 거쳐 화음으로 태어나려면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1박 2일 캠프를 간 적이 있어요. 좁은 A형 텐트에서 11명이 부대끼며 잠을 잤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니까 비바람이 몰아쳐 먹을 게 다 날아갔지 뭐예요? 다른 텐트에서 자고 있던 선생님도 온데간데없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애타게 찾았는데 저 멀리서 선생님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가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커다란 소쿠리에 설탕이 뿌려진 토마토가 한가득 있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리더는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요."

전국 최초 고등학생 남녀혼성합창단이 만들어질 때 그의 리더십은 빛났다.

나래합창단 제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던 지난 1971년. 마산 '초유의' 중고생 4부 혼성합창단으로 첫 나래를 펼쳤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교 측의 반대가 강했다. (한 선배의 전언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합창단을 남녀 청소년들의 사교의 장으로 보는 이미지가 강했다) 남녀 청소년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일탈로 보았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장 지휘자는 동분서주 움직였다. 교장들을 설득했고 당시 천주교 마산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합창단은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합창을 통해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진심은 통했다.

▲ 웃음 짓는 장기홍 지휘자.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연습장소가 없어 가포 바닷가에 기타 하나 들고 나가 노래를 부르며 합창단을 이끌었지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악기는 구경조차 못하던 시절, 내 몸뚱이에서 나오는 소리로 만드는 하모니가 가장 즐거운 놀이요, 문화였으니까요."

나래합창단은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김성중 경남오페라단 운영위원, 설진환 작곡가, 유영성 창원대 교수, 이상엽 창원시합창연합회 회장 등이다. 동문은 성인이 돼서도 버들합창단 등을 만들어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는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코리아합창제 고문, 마산 가곡 부르기 지도, 예그린 합창단 지휘,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가곡교실 전문강사.' 그의 명함에 적힌 직함 말고도 그가 맡은 일은 훨씬 많다. "어른이라는 자리가 참 어려워요. 오랜 시간 예술계에 몸담았다고 해서 후배들을 훈육하는 건 싫어요. 그냥 전 '쓰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뿐이에요."

▲ 경남도민일보 문화체육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장기홍 지휘자.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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