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서적에 그 시대상 보여
지친 마음 다독이는 책 많아 씁쓸

출판도 유행이 있다. 편집자는 이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한다.

요즘 편집자는 저자가 던져주는 원고를 이리저리 만져서 세상에 내어놓는 위치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예민한 두 눈과 귀로 트렌드(trend)를 파악하여 어떤 주제의 책을 낼지 기획하고 그에 맞는 저자를 찾아 나선다.

저자의 원고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독자들의 트렌드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출판사는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독자들이 '사고 싶어 하는 책'을 직접 기획한다.

서점에서 특정 주제의 책이 범람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유명인의 성공 일대기를 전시하듯 담은 자기계발서가 온 서점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메시지가 청년들의 가슴에 내려와 꽂혔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청년들은 더는 노력만으로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세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이제 서점에서는 개인의 노력이나 칠전팔기 정신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는 유행에서 완전히 밀려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 한 해, 이러한 메시지에 반기를 드는 서적들이 도서관과 서점을 가득 메웠다.

파스텔톤 색상과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써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예쁜 표지를 콘셉트로 하고,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는 무릎을 탁! 칠 만한 문장을 제목으로 하는 책이 범람하고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나는 나야, 그동안 수고했어>,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등 이른바 '위로 에세이'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독자들의 엄청난 선택을 받으며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반려식물 키우는 방법이나 감각을 자극하는 실내 식물이나 꽃과 관련한 도서, 반려동물인 고양이에 에세이나 인문 서적들도 서점의 꽤 많은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들은 공통으로 그동안 '노력은 성공을 배신하지 않는다', '무조건 직진' 등의 메시지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오다 지쳐 버린 청년, 혹은 마음이 병들어 버린 사회인들에게 이제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나만의 휴식이 필요하다고도 역설한다. 결국, 이 서적들이 유행하는 현상으로 우리는 요즘 청년들의 심리와 행동, 더 나아가 사회 현상까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경쟁하는 삶에 지쳐 있고, 52시간 근무 환경에 따라 나만의 취미생활을 가지고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은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위로 에세이'가 한동안 계속 서점 매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는 위로가 필요한 독자들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서점에는 위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울증 치료, 심리 치료 등 본격 '치유 에세이'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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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현대인들이 '위로'를 넘어 '치료'가 필요할 만큼 더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거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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