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변화 끌어내는 '생존을 위한 감정'
수치 모르는 자들, 인류 위협하는 존재

최근 <사이언스 타임즈> 기사에 인간의 감정, 특히 부끄러움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소개됐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 연구진이 부끄러움의 발달 근거를 알아보기 위해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 15곳에 사는 사람 89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들과 동일한 성별을 지닌 가상의 인물들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들이 부끄러운지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 참가자들의 답변이 전반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끄러움이 각각의 문화에 의해 생성되었다기보다 진화적 측면의 자연선택에 의해 뿌리내린 감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험의 결과는 감정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찰스 다윈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년)>이라는 책을 통해 감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 책에 따르면 기쁨·즐거움·불안·슬픔·분노·공포·부끄러움 등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학습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고 유전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의 감정은 인종 또는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다윈과 몬트리올 대학의 연구 결과대로라면, 수많은 인간의 감정은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위험을 피하는 두려움, 불의에 맞서 싸우는 분노, 고통을 견디는 인내와 같이 부끄러움도 인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 중 하나라는 뜻이다. 부끄러움의 감정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으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일을 잘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자기 평가와 검열을 통해서 나타난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연결되어 자신을 바꾸고, 책임감 있는 행동, 도덕적인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 이처럼 부끄러움이 가지는 자기반성과 시정 효과는 사회적 결속력을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이언스 타임즈> 기사를 인용하면 "규칙을 어긴 구성원들은 집단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수치스러운 경험 때문에 구성원들은 규칙을 따르고, 집단 공통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일할 가능성이 크다. 즉, 다른 구성원들과 대립하는 행동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므로 그것을 위반할 때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끄러움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유용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면, 사회적 관계를 해치는 상황을 방지하거나 그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적 성숙함을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부끄러움은 인간에게 생물학적 진화와 함께 사회적 진화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사회를 보면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보다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금방 탄로 날 일을 쉽게 거짓말하는 연예인, 국민보다 정쟁에 매달리는 정치인, 위법에도 경제적 이익만 좇는 경제인 등 아침저녁으로 접하고 있다. 너무 흔해져 버린 일상 같은 상황 속에 우리는 그들의 뻔뻔함을 너무 관대하게 여기거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저들의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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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인류 생존을 위한 감정이다. 이는 곧 부끄러움이 사라지면 우리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인 윤동주도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며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부끄러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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