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랑 개구리가 지천이라 아직은 '안심'인 삶터

푸른 뱀이 기어가고 있다. 얼핏, 스쳐 지나는 빛깔이 푸른색이다. 콘크리트 찻길에다 ‘ㄹ’자를 그리며 구불구불 기어가는 게 선명했다. 풀밭과 어울려 있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꽃무늬가 있으면서 전체로 볼 때는 누런색을 띄었을 것이다.
뱀과 개구리가 살고 있으면 건강하고 안정된 생태계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골짜기에 살고 있는 생물의 처지에서 볼 때 안심계곡은, ‘아직은 안심해도 되는’ 삶터인 셈이다. 한 번 산행길에 세 마리나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구리도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배를 뒤집으면 알록달록 무늬가 나오는 비단개구리와 작은 주먹만한 게 누릇누릇한 참개구리와 조그맣고 초록으로 빛나는 청개구리 따위가 길섶에 숨었다가 복병처럼 튀어나온다.
물에도 피리는 아닌 듯한 물고기가 손가락 두 마디만한 굵기를 뽐내며 헤엄을 친다. 가재는 보이지 않고 다슬기가 다닥다닥 붙은 바위 틈새로 뒷다리가 살짝 나온 올챙이가 꼬물거리는데 물 속에 놀던 아이는 “와, 플라나리아다!” 외친다.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플라나리아는 조그만 지렁이 같이 생겼는데 몸을 쪼개면 쪼개는 대로 살아나는 신기한 동물이다. 물이 더러워지면 몸통이 흐트러지면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하니 이 골짜기가 건강한 생태를 이어 오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안심계곡은 풍경이 아주 빼어나지는 않다. 비틀어진 못난 소나무가 고향 산천과 선산을 지키듯이, 평범한 생김새 덕분에 이나마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돌돌돌 구르며 골짝 바위를 때리는 물소리만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떼지어 시끌벅적하게 놀 데는 아니다. 작으나마 곳곳에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있고 소나무 아카시아나무 따위들과 키 큰 갈대들이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식구들끼리 탁족(濯足)을 할만한 곳이다.
서늘한 그늘도 다가서고 너른 바위가 펼쳐진 데도 나온다. 오른쪽 언덕 위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데는 높이 5m쯤 되는 폭포도 하나 있다. 바로 아래에는 젊은이 셋이 물에 손을 적시며 웃음소리를 높이는데 널찍한 자갈밭에는 두 집 부부가 술 한 잔 고기 한 점 자리를 펼쳐놓았다. 지금은 물이 말라 쨀쨀거리지만, 비 온 뒷날 찾으면 꽤 볼만하겠다.
이처럼 편평한 바위와 나무그늘이 한 데 갖춰진 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런 데 자리잡아 도시락을 까먹고 두런두런 세상사를 얘기하거나 바위에 기대어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두서넛이 즐길만한 바둑이나 윷을 챙겨도 좋지 않을까. 아이들은 흐르는 물 속에 바지 걷고 조그만 그물채 들고 들어가면 서너 시간은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비탈을 타고 올라 지천으로 널린 산딸기나 따 모으든지.
안심계곡 들머리 안심마을에서 비슬산 줄기를 타는 즐거움을 앞세울 수도 있다. 높이가 1084m인 비슬산은 경북 청도와 대구 달성의 경계로 알려져 있지만 창녕의 북쪽 성산면 안심마을에도 자락을 흘리고 있다.
꼭대기까지 반드시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ㄷ’자 모양으로 들판을 감싸 안은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대밭 뒤로 돌아가면 안심사가 나온다. 왼쪽 옆구리에 오솔길이 나오는데 바로 각료암으로 이어준다. 각료암 가는 길은 넉넉잡아 30분이면 충분하다.
오른편에는 산자락을 따라서 커다란 바위들이 잔뜩 널려 있는데 이를테면 두 절집이 너덜겅 아래위쪽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암자에서는 안심사 절간의 뒤통수와 둘레를 희게 드러낸 저수지와 다락처럼 올려붙인 논밭들과 도로에 매달린 마을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큰 고개 세 개를 넘거나 낙동강을 끼고 돌아야 하는 산골치고는 제법 넓은 편이다. 지금은 몰라도 임진왜란은 물론 6·25 때만 해도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할 수 있는 곳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볼만한 곳-영산 연지(硯池)

안심계곡이 창녕의 북쪽 끝이라면 영산은 창녕의 남쪽에 가깝다. 지금은 창녕군에 들어 있는 한 개 면일 뿐이지만 사실은 남다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따라서 영산은 돌을 둥글게 쌓아올린 만년교와 석빙고를 비롯해 여러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지나는 길에 잠시 쉬어가기 알맞은 동네다. 면소재지 들머리에는 연지라는 연못이 있다. 풍수지리에 따라 영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일부러 만든 연못이라고 한다. 연지라고 하면 연꽃 연(蓮)자를 쓰는 게 보통인데 벼루 연(硯)자를 쓴 것이 별나다.
못 가운데는 섬 다섯 개가 둥둥 떠 있다. 용이 물고 희롱하는 여의주인 셈이다. 옛날에는 놀이배가 떴음직도 한데 지금은 길가쪽 섬에만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다. ‘중고생 어린애들이 하도 더렵혀서’ 다리에다 철책을 해 달았지만 타고 넘어 들어가도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은 없다.
섬에는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역사가 오랜 것은 아니어서 아랫도리에는 찍어바른 시멘트 자국이 뚜렷하다. 한 쪽에는 중년 남자들이 모여 이제 막 끝난 선거 얘기를 하고 있다. 술까지 한 잔 걸쳤는지 목소리가 높다.
연못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시원한 바람은 어디서나 쐴 수 있다. 긴의자도 있지만 못 가에 그냥 주저앉아도 되고 아니면 이리저리 놓여 있는 큼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아도 되겠다.
보기에도 좋으라고 바람 따라 수양버들이 이리저리 소리를 내며 휘어진다. 장만해 온 군것질거리가 있다면 이처럼 잠깐 둘러본 뒤 연못가 나무 아래에다 풀어놓으면 된다.


△찾아가는 길

마산·창원·함안에서는 국도 5호선을 대구쪽으로 타고 가면 된다. 진주나 합천에서는 청도로 이어지는 20호 국도에 자동차를 올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일단 창녕 읍내까지 간 다음 5호선에서 20호선으로, 또는 20호선에서 5호선으로 바꿔 타도 된다. 또 국도를 타는 게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이를 위해서는 구마고속도로가 준비돼 있는데, 창녕 나들목으로 빠져서 국도 5호선이나 20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다.
국도 20호선은 고암면 소재지에서 신호등에 걸렸다가 왼쪽으로 꺾어진다. 여기서 곧바로 가는 24호 국도는 밀양으로 가는 길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20호선은 이리저리 구불대며 높은 고개를 넘는다. 오르고 보니 방골재라고 한다.
방골재가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방리삼거리가 있다. 여기서 왼편으로 1034번 지방도 따라 돌아서면 성산면 가는 길이다. 면소재지를 지나 4km쯤 되는 데서 ‘대산·연당’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된다.
길 따라 가면서 연화·연당 마을을 지나면 낡은 표지판에 ‘안심·월곡’이 나온다. 여기서 안심골짜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국도 5호선을 타고서는 읍내에서 10분 남짓 가면 대합면 소재지인 십이리에 가 닿는다. 여기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후천 마을에서 지방도 1034번 따라 우회전해야 한다. 정령 마을을 지나면 ‘안심·월곡’ 표지판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진주에서는 5분마다 있는 마산행 버스를 타고 가서 갈아타야 한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055-256-1621)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20~30분마다 창녕행 버스가 있다.
창녕 읍내서는 당연히 군내버스를 타야 한다. 영신버스(055-533-4221)에서는 안심마을까지 아침 7시 15분과 10시 20분, 오후 4시 30분과 6시 20분 네 차례 버스를 내고 있다. 마을에서 골짜기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나오는 차편은 버스 들어가는 시각에다 20~30분을 더하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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