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제한 강화한 공무국외출장 규칙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 없다면 무의미

오래전 일이다. 경남도내 한 의회가 유럽으로 선진지 견학을 갔다. 의회는 공무국외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로부터 출장 계획을 심사받았다. 심의위는 짧은 일정에 여러 국가를 방문하는 것은 오히려 관광 성격으로 흐를 수 있다며 특정 국가 방문계획을 불허한 계획서를 통과시켰고, 의원들은 수정한 계획서대로 일정을 진행하기로 하고 출국했다. 문제는 의원들이 귀국하고서 한 달 정도 지난 후 생겼다. 심의위가 계획서에서 삭제한 특정 국가를 기어코 방문해 해당 방문지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는 사실이 의원들 입에서 나와버린 것이다. 뭇매를 맞을 상황이었지만 다른 이슈에 묻히고, 의원들이 발뺌을 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최근 전국 기초의회가 공무국외여행 규칙안을 새로 만드느라 부산하다. 행정안전부가 개정을 권고하면서 내려보낸 규칙이긴 하지만 국외출장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 방법 등을 강화한 내용이다. 고성군의회도 이번 1차 정례회 기간에 기존 '고성군의회 의원 공무국외여행 규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고성군의회 의원 공무국외출장 규칙안'을 제정하고자 의원발의로 안건을 올려 오는 20일 2차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행안부가 권고한 규칙을 보면 진일보한 내용이 많다. 기존 고성군의회 공무국외여행 규정에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5인 이내로 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은 의장이 위촉하는 대학교수, 사회단체 대표 등 3인과 당연직으로 의회 부의장, 의회사무과장이 맡아왔다. 하지만, 새로운 규칙안에는 심사위 정수를 7인 이상으로 확대하고, 민간위원 비율을 과반수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한, 부의장이 맡았던 심사위 위원장을 민간위원 중 호선하도록 해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공무국외출장을 제한하는 내용은 더욱 강화했다. 의원 전체나 나 홀로 공무국외여행을 할 수 없도록 했고,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해에는 국외출장을 제한해 임기 종료를 앞두고 행해지던 의원들의 쫑파티(?)를 못하도록 했다. 재미난 것은 공무국외출장 중 물의를 일으켜 징계를 받은 의원은 출장을 갈 수 없도록 했다. 이는 지난해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추태 때문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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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강화된 규칙을 만들어도 의원들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오죽했으면 행안부가 의원들의 공무국외여행에 대한 기준을 내려보냈을까 생각하면 기초의회 현주소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관리·감독이 느슨한 외국에서 본분을 망각하면 출장계획서는 결국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성군의회가 발 빠르게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자 안건으로 올린 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군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다짐하는 고성군의회 의원들의 집단 지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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