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성인지 감수성 드러내는 정치인
왜곡·혐오·폭력 조장하는 일 멈춰라

지난 4월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국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감금에 몸싸움은 기본이고 국회에 등장한 망치와 문을 여는 빠루까지…. 폭력이 일상화한 국회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운 지경이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그리고 현재도 지속하고 있는 갈등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임이자 의원과 문희상 의장 간의 성추행 논란과 며칠 전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까지….

성추행 사건은 사보임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항의 방문했던 자유한국당과 문희상 의장 간의 충돌 과정에서 발생했다. "더 나가면 성추행"이라는 말에 문희상 의장은 "이러면 성추행이냐"며 임이자 의원의 뺨을 감쌌다. 아무리 황당한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성추행 발언을 지나치게 가볍게 받아들이고 임 의원의 뺨에 손을 댄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성추행이라며 공격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추행을 이용하는 것은 치졸하기까지 하다.

문희상 의장이 빠져나가려고 할 때 "여성 의원이 막아야 한다"고 소리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입에서 성희롱이라는 말은 나와서는 안 될 말이다. 정치인들은 대체 여성을, 성희롱을, 나아가 성폭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추행을 유도하고 이를 이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지난해 수많은 미투(metoo)가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왜곡된 인식과 편견에 놀랄 따름이다. 이뿐인가? 임이자 의원을 두둔한다며 내놓은 동료 의원들의 발언은 그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고 조롱하고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성추행해도 되느냐"는 이채익 의원의 발언이나 "아직 결혼을 안 한 상황인데 그 수치감과 성적 모멸감이 어땠을지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한 송희경 의원의 발언은 이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바닥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못난' 사람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여성의 결혼 유무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가? 이러한 발언은 과연 누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있는가?

정치인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무지를 가장한 폭력은 끝도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며칠 전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장외집회에서 '달창'이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그 뜻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했으나 막말의 대표주자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뜻을 모르고 사용했다면 더욱 큰 문제일 수 있고, 뜻을 알고도 사용했다면 극히 부적절한 처사"라고 했다. 한국여성단체의 지적처럼 이것은 단순한 실수나 무지가 아니라 여성혐오와 낙인을 조장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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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이 이토록 비판받는 것은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 성폭력에 대한 어떤 가슴 깊은 이해도 없이 그들의 무지를 너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폭력에 대한 왜곡을, 여성에 대한 혐오를, 그리고 나아가 또 다른 폭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높은 성인지 감수성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상식 수준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일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제발 무지를 가장한 폭력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일만은 멈춰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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