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씻고 일상 되찾기 나서
주민들 사랑공동체 결성 '소통'
화합행사 등 열어 분위기 쇄신
"정다운 이웃·단지 회복하고파"

지난달 17일 방화살인범 안인득(42)에 의해 참사가 벌어진 진주시내 한 아파트는 아픔을 겪은 지 한 달 정도 지나면서 서서히 정상을 되찾고 있다.

참사 한 달째를 맞은 이 아파트는 경찰이 순찰을 하거나 방화 흔적을 제외하곤 그때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참사 얘기를 꺼내면 주민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불쾌해했다.

15일 아파트 관리사무소 옆 정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밤이 되면 무섭다. 아픈 기억을 지우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끔 기자들이 나타나 그때 상황을 묻는데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안인득의 집(403호)을 정리하자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진작에 하지'라며 아쉬워했다.

안인득의 집은 경찰 등이 입회한 가운데 불에 탄 가재도구를 치우는 작업을 했다. 사건 한 달 만에 완전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한 달이 지났지만, 반쯤 열린 출입문에서는 심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안인득이 불을 지른 집 내부는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필요한 증거확보를 위해 창문을 열어둔 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수사상 필요할 수 있지만 한 달째 그대로 두는 것은 트라우마를 겪는 주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뒤늦은 공사를 지적했다. 이 집은 완전 리모델링을 하고 나면 다른 입주자가 입주할 예정이다.

▲ 진주 방화·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됐다. 지난 6일 열린 주민화합행사에서 아이들이 함께 줄넘기를 하고 있다. /아파트관리사무소

이런 가운데서도 참사 당시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선 주민 스스로 '사랑공동체'를 결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온라인을 통한 밴드도 만들면서 소문이 퍼져 아파트 주민들도 속속 가입해 소통하고 있다.

이들과 관리사무소가 힘을 합쳐 지난 6일 주민화합행사도 열었다. 자장면 400그릇이 제공됐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우리 마을'을 주제로 그림 그리기 대회도 열렸다. 놀이터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줄넘기 놀이를 하면서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 주민은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에 참사 이후 울적했던 마음을 털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밴드를 만든 한 간부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용기를 냈다. 아픔을 스스로 극복해 전국적인 표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오는 10월에는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주민 화합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분위기 일신에 적극적이다.

정경안 관리사무소장은 "사무소 직원도 참사 당일 안인득이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다쳐 전치 20주의 중상을 입어 직원들이 걱정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힘을 낸다"고 말했다. 당시 다친 직원은 아직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시 피를 흘리며 주민 대피를 돕고 사상자가 모두 구급차에 탄 후 맨 마지막에 119구급차에 실려 쓰러진 것이 알려지면서 진주시에 수상을 건의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어 정 소장은 "몇몇 주민은 참사 뒤 한동안 외출을 못할 정도로 극도로 불안해했지만 최근 외출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하루빨리 아픔과 슬픔을 떨치고 예전처럼 정다운 이웃, 활기찬 단지로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부터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에 설치됐던 '현장 이동 통합 심리상담센터'는 지난 12일 철수하고,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센터는 방문자가 줄면서 인근에 있는 개인 심리상담소로 상담장소를 옮겼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500여m 떨어진 곳이어서 노약자들이 걸어서 오가기엔 멀게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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