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막말 해놓고 의미 몰랐다니 구차
오죽하면 홍준표마저 "저질"이라 했겠나

내 귀가 스스로 더럽다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즈음 우리의 삶이 이 모양이다. 명색이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는 이의 입만 봐도 그렇다.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처럼, 우리의 삶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말하고 쓰기가 우리의 자연적 본성과 무의식적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더러운 말 때문에 난생처음 내 귀가 스스로 더럽다는 느낌이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어물쩍 넘길 순 없질 않은가.

자연적 본성으로부터 위태롭게 주어진 아름다움의 일부를 훼손당했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물론 페소아의 말처럼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단지 임시변통의 신화일 뿐이며 삶의 분장을 하고 살아감을 연기하는 허무와 망각의 단역배우일 뿐"이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제1야당 원내대표 아니, 나경원이란 한 인간의 하찮은 입에 내 귀가 더러워졌다는 이 느낌이 더더욱 불쾌한 것인지 모른다.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소중한 것은 아마도 말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말한 이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디 말뿐이겠는가. 글은 더더욱 그렇다. 글로 밥을 버는 작가들은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이들의 '문학적 표현'조차 가끔은 질타를 받을 때가 있다. 언젠가 단풍 사진과 함께 짤막하게 올린 글에서 단풍을 화냥년에 비유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외수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이즈음 나경원을 필두로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입을 생각하면 이외수의 입은 그야말로 '단풍 같은'(?) 입이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대구 장외집회에서 "대담할 때 KBS 기자가 물어봤는데 그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당하는 거 아느냐"며 "대통령한테 독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지도 못하냐. 묻지도 못하는 거, 이게 바로 독재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 입에서 '독재'란 단어가 무슨 벌레도 아니고 스스럼없이 나오는 사실조차 너무 뻔뻔스러운 일 아닌가. '달창'은 '달빛창녀단'의 준말로 극우 네티즌들이 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달빛기사단'을 비하하는 말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나경원은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썼다"고 밝혔다.

입(말)은 글처럼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해서, 죽음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는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개인에 관해서는 그렇다. 그러나 나경원의 입은 문학을 더럽히는 '문학적인'(?) 입을 가진 전두환처럼 이미 해석되었고 간파당했다. 5·18 유공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이 "거짓말쟁이는 단지 '문학적 표현'이었다"는 주장을 떠올리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오죽하면 막말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홍준표 전 대표마저 나경원 발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을까.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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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입장에서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금빛으로 물든 시궁창의 진화'다. 사실 나경원을 필두로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막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나경원, 3월 13일)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켜 버립시다, 여러분!"(김무성, 5월 4일) "이게 미친 정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러분!"(임이자, 5월 3일) 이런 입들이 문학적 혹은 은유적인 표현이란 그럴 듯한 핑계로 넘어갈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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