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섬·한국철강 터 대형 개발사업 집중 조명
공원 등 공공용지 부족 문제 지적, 대규모 아파트 조성 논란 이슈화
2003년 당시 김두관 행자부 장관, 창원·마산·진해 통합 언급 보도

독자와 지역사회에 유의미한 경남도민일보의 역사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세 가지 뼈대를 갖고 정리한 약사(略史)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언론으로 어떻게 성장해왔나, 지역사회에는 어떤 역할을 해왔나? 끝으로 독자와 어떻게 교감했고, 어떤 평가를 받아왔나? 1999년 창간 전후부터 2018년까지 모두 10편으로 정리합니다.

소설 장르에 '성장소설'이란 게 있다. 한 인물이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내가 그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에 흠뻑 빠져들었다. 얼추 추산해서 매일 20개 면(그 중 전면광고 등을 제외하면 평균 18면), 신문이 발행된 한 달 20일, 1년 12달의 2년 치를 계산하면 8640여 면에 이른다. 면별로 평균 4개 기사로 보면 3만 건이 넘는 기사다. 이걸 일별하면서 '아하 그땐 그랬지'라거나 '어 이건 중요한 건데 왜 내가 카운트하지 않았지'라며 회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주목한 키워드는 3개다. 처음, 끝, 과정. 역사는 분절된 사건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 일이 언제 시작됐는가, 그 일은 어떻게 종료됐는가, 그 진행 과정은 어떠했는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아울러 살피지 않으면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2년 치 신문 지면을 일별하다보니 내 생각이 영 그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남도민일보가 창간하기 이전부터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남도민일보가 한 축을 맡아 적극적으로 해결해낸 사례를 발견한 것은 소소한 기쁨이었다.

◇지도를 바꾼 결정

이른바 '마창진' 3개 시는 2010년 논란 끝에 통합해 '창원시'가 됐다. 조선시대 하나의 '창원부'였으니 원점회귀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후 역사 흐름은 이를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마산야구센터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이라는 이름 결정과정에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통합 창원시'라는 명칭 이전에도 마산 창원 진해를 함께 부르는 용어는 많았다. 마창진, 창마진, 진창마 등 각 도시의 앞글자를 딴 이름뿐만 아니라 '산해원'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만큼 세 도시는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단지, 진해·창원·마산 간 시경계를 넘을 때 시내버스 추가 요금을 징수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이 '하나의 생활권'에 만족하지 않는 움직임도 오래됐는데, 2003년 노무현 정부 들어서고 첫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던 김두관 장관이 여기에 불씨를 지폈다.

2003년 7월 11일 1면에는 <김 행자 "마창진 통합할 수도"> 기사가 실렸다. 지방분권포럼에 참가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행정구역 체제 개편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마창진 통합 가능성을 말한 것. 이후 경남도가 발끈하고 나섰고, 김 장관은 "대통령도 지지하는 사안"이라며 대응했다. 김 장관은 당시 본보가 자매지로 발행하던 <위클리 경남>과 인터뷰에서 이런 뜻을 밝히기도 했다.

도의회도 나서서 마창진 통합논의를 중단하라는 반대결의안도 채택하는 등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이런 조짐은 이에 앞서 이미 지역에서 모닥불 지피듯 준비되고 있었다.

2003년 1월 29일 <마·창·진·김해·함안 광역도시 '반대 움직임'> 기사가 실렸다. 정부와 경남도가 5개 시군을 하나의 광역도시권으로 묶어 개발제한구역 부분해제를 추진하는 데 대해 해당 지역 의회가 반발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안은 도의회가 나서 행정사무조사까지 벌였지만 건설교통부는 "경남도가 먼저 요구한 것"이라며 뒷북 의회를 나무라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3개 시 통합안은 역사속에 지워지는가 싶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인들이 강령술사가 '죽은 심령 불러내는 도술'을 부린 듯 화려하게 부활시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 지난 1999년 6월 12일 당시 한일합섬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한국철강 터와 한일합섬 터 재개발 등

한때 마산시는 '전국 7대 도시' '공업도시'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명칭을 뒤로하고 '쇠락하는 도시'가 되는 상징적인 것이 한국철강 이전과 한일합섬의 몰락이었다.

마산 해운동에 있는 한국철강 터에는 부영이 아파트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고, 마산 양덕동 한일합섬 터에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주민이 살고 있다.

2003년 1월 7일 1면에는 한철 터 공영개발이 가시화됐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지금 부영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지만, 그동안 토양 오염 논란을 비롯해 부영아파트 미분양과 그에 따른 회사 측의 계약해지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불씨는 이때 지펴지고 있었다.

마산시가 주도하는 공영개발이 기대를 받던 중 3월 19일 1면에는 <마산 한철터 공영개발 물거품> 기사가 실렸다. 회사 측이 ㈜부영에 1667억 원을 받고 터를 매각했다는 내용인데, 그간 한국철강과 협상을 벌여왔던 마산시 황철곤 시장은 재원이 없어 공익 인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3월 20일 자부터 본보는 한철이 떠나고 공익개발마저 무산된 데 대한 기획으로 주민 불편과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마산의 지도를 바꿔놓은 대규모 개발사업인 한철 터 개발과 함께 한일합섬터 개발을 둘러싼 논란도 크게 일었다.

4월 3일 1면과 3면에 <한일합섬터 개발 공공용지 부족> 기사를 게재하면서 본격화한 공공용지 문제. 특히 4월 4일 1면과 3면에도 <한일합섬터 인구계산 틀렸다> 기사와 개발계획 공청회 현장 소식을 전했다. 단지 관통도로 개설 필요성이 제기됐고 '날림 계획'이라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4월 29일 1면에는 마산시 한일합섬터 개발업무보고회에서 <"시민요구 수용 불가"> 결론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채무 변제 자금 확보위해서는 시민들이 요구한 관통도로 개설 등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개발사 측 주장이 나왔다는 것. 3면에는 <"빚 갚는데 시민 볼모" 의회 발끈>이라는 제목으로 마산시의회가 98년 애초 계획을 내놓으라며 압박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여기에 신포매립지 활용 계획이 기름을 부었다. 2003년 7월 7일 자 3면에는 <아파트 '벽'으로 마산 가두나> 기사가 실렸다. 4월 매립공사가 끝난 마산 신포매립지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 계획을 제출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한일합섬 터와 신포 매립지에 대한 핵심은 '공공용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한일합섬 터 개발에는 관통 도로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쏟아졌다.

7월 11일 3면에는 <"녹지 확보 위해 기업 설득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황철곤 마산시장이 언론 통해 마산 한일합섬터와 신포매립지 개발 관련해 공공용지 확보를 강조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시민사회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한일합섬 터와 신포매립지 개발 건은 이미 완료됐지만 한국철강 터는 이후 토양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역사회에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됐다.

창원시는 토월천을 복개해 시민생활체육관~기계연구원 왕복 6차로 도로 개설을 2000년부터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대우아파트 주민과 외동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나서 이를 막아서면서 오랜시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2003년 2월 4일 1면에는 <토월천 복개공사 전면 중단> 기사가 실렸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대우아파트 주민 등과 본보가 적극적으로 결합해 함께 문제 해결을 모색해왔다. 주민들은 '토월천 물방개'라는 시민환경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면서 본보는 액세스(시민참여)지면 '우리는요'를 통해 이들의 활동 내용을 알렸다.

7월 14일 18면에는 <창원 토월천 민관협 오늘 도로확장 토론회> 기사. 시는 편도 3차로였던 계획을 수정해 편도 2차로 도로확장 안을 들고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토월천 물방개는 확장 무용론을 제기할 것으로 보여 합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 7월 21일 3면에는 <토월천 '보존' '개발' 어떤길 갈까>에서 26일 민관협의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7월 28일 1면에는 합의가 불발됐다고 보도했다. 창원시 최초로 민관 협의회를 구성하고 쟁점사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3분의2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면서 합의가 불발됐다고 전했다. 현재는 편도 2차로 부분 복개로 해당 도로가 개설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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