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공통경비, 식비·선물값으로 써
관행으로 넘길 수 없는 권한남용 아닌가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확횡'을 한 적 있다. '소소하고 확실한 횡령'이라는 뜻으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신조어이다. 회사 행사에서 남은 과자나 커피믹스 챙기기, 사무실에서 개인자료 프린트하기, 블루투스 이어폰 충전하기는 지금도 종종 저지르는 소확횡이다.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처럼 소확횡을 사회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일탈행동이라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이를 범죄로 인식하는 자각이다. 회사 비품을 관리 또는 보관하는 직원이 아니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타인의 재물을 허락 없이 가져가면 절도죄가 될 수 있다. 회사 비품을 함부로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집에까지 들고 가면 문제가 된다. 법률용어로 '불법영득의사'로 해석한다.

그동안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나, 관행 정도로만 여겼던 인식을 바꾸는 단어가 소확횡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범죄가 용인되어 온 게 현실이니까. 인사청문회나 행정사무감사 등에서 드러나는 관행들만 봐도 그렇다.

지난 10일 자 <경남도민일보>에서 보도한 '지방의회 의정운영공통경비 분석' 기사를 보면 소확횡이 만연한 곳이 지방의회라는 생각이 든다. 업무추진비에 포함된 공통경비는 의정활동에 필요한 공청회나 세미나·회의·행사·교육 등에 사용한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12월 말까지 6개월간 경남도의회는 공통경비로 2억 7000여만 원을 썼다. 이 가운데 83%(2억 3000만 원 상당)가 식비와 다과비였다. 정책토론회나 교육 등에 쓴 공통경비는 2%에 불과했다.

경남도의원이 모두 58명(비례대표 포함)이니 어림잡아 계산해도 한 사람당 400만 원가량 식비·다과비로 지출했다. 한 달에 평균 67만 원꼴이다. 의원들 간 형평성도 없다. 교섭단체인 거대정당 의원들이 더 많이 쓴다. 물론 의원들은 월급 개념인 의정비(의정활동비+월정수당)를 받는다.

보통 직장인들 월급에는 식비가 교통비 등과 함께 복리후생비로 포함된다. 그런데 의원들은 월급 따로, 밥값 따로다. '공짜밥'을 너무나 많이 먹는다. 공통경비는 정해진 범위에서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포괄사업비다. '공적인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라고 규정하지만, 의정활동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의원들 생일선물이나 명절 선물, 친선경기에 필요한 유니폼, 개인전시에 보내는 축하떡, 업무용 가방을 사는 것까지 의정활동으로 봐야 할까? 이것이 특권 또는 권한남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자각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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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기업 직장인들은 회사 형편에 따라 월급이 달라진다. 그러나 의원들 월급은 세금이다. 세금 집행은 투명성이 기본이다. 더구나 집행부 예산을 심의·결정하는 의회에서 세금을 눈먼 돈처럼 쓰는 건 모순적이다. 그 예산이 결코 소소하지 않다.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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