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아동 노동인권 선언으로 출발
어른과 동등한 '인격적 존재'기억하자

한국이 세계에 내세우는 자랑거리 중 하나에 어린이날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최초의 어린이날이 5월 5일이 아니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23년, 방정환과 김기전 등 선각자들이 주축이 되어 어린이날로 공식 선포한 날은 5월 1일이었다. 세계노동절인 메이데이와 날짜가 겹치는 날이다. 어린이날은 작은 메이데이이자 아동의 메이데이였고 아동의 노동 인권을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방정환 선생 등은 천도교 신자들이었지만 어린이날 탄생은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갓 태어난 직후 세계적으로 열풍이 일던 사회주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여성의 날 기원도 그런 경로로 만들어졌다. 성인 남성 중심의 메이데이가 태어난 이후, 세계 여성의 날과 우리의 어린이날이 추가로 만들어짐으로써 성과 연령의 약자에게도 적용되는 메이데이가 완성되었다. 메이데이의 당당한 한 축으로서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린이날 제정과 노동을 떼어놓을 수 없음은 최초의 어린이날에 뿌려진 선언문에서도 드러난다. 선언문은 만14세 이하의 어린이는 무상이든, 유상이든 노동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드러내는 것은 인격적 존엄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그 시대 어린이들이 처한 처절한 인권 상황이었다. 당시는 아동노동이 일반적이던 시대였다. 대여섯 살 아이가 아이보개나 머슴으로 팔려가던 시대였고, 형편없는 끼니나 잠 잘 공간만 주면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도 어린이 노동을 공짜로 부릴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유상이라도 아동노동을 쓰지 말라고 한 어린이 운동 선각자들의 주장은, 한국어에 '어린이'라는 말을 새로 태어나게 한 것과 더불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린이날의 본디 색깔은 몽땅 탈색된 채 어버이날과 결합하여 '가정의 달'에 있는 노는 날로 전락한 오늘날의 어린이날 위상으로는 그 시절을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평소에 무심하고 인색하던 아버지가 딴에는 큰맘 먹고 구독하게 해준 어린이 월간지를 선물 받은 것으로 어린이날을 졸업했다. 그런 소박하던 어린이날도 경제 성장과 더불어 많이 달라졌다. 어린이날이 아이들이 부모의 지갑 터는 날쯤으로도 격하한 요즘, 어린이날을 없애자고 하는 주장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일 년 내내 어린이날인데 기념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린이날은 요즘 아이들에게 일 년 내내 어린이날이라서 폐지론이 나올 만하기보다 이날 하루만큼만 어린이 인권을 돌아보게 하는 날이 되었다. 21세기의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1920년대 어린이 운동 선각자들이 주창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몇 달 전 시내에서 어른들과 함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리던 중학생들을 만났다. 그 학생들이 내게 준 유인물은 학교 허락 없이 학생이 정치 집회나 외부 행사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 학생들에게 학교의 허락을 받고 나서 유인물을 돌리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이 그들 스스로 비난하는 학생인권조례안에 부합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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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그 학생들을 동원했다면 그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주체적 판단을 할 기회도 없이 필시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활동을 하는 요즘 청소년의 인격적 예우 수준이 어린이날이 태어나던 때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린이가 가정의 돌봄을 받는 대상이기에 앞서 어른과 동등한 인격적 존재임을 천명한 날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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