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폐단
건설사 조합 등 작품 값 짬짜미
일부 작가 작업 수탁 독점 악습
경남도, 심의위 인원 부족 한계
작품 선정 공모제 등 방안 모색

올해로 도시 환경에 의무적으로 문화적 이미지를 입힌 지 24년이다. 1995년 건축물에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거리마다 작품 천지고 공공미술이 바로 내 옆에 있지만 현재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미술계에서 케케묵은 나쁜 관행의 선례다. 최근 경남도가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공정성 확보 방안'을 듣겠다고 나섰다. 과연 지자체가 오랜 폐단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유의미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20년 넘은 제도, 오랜 악습"

조각가 김 모 씨는 도내 한 아파트 조합으로부터 신축 아파트 현장에 놓을 미술품 제작 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작품 값을 낮추자는 제안도 함께 받았다. 조합은 중간 대행 수수료를 요구하며 암묵적으로 건축 비용의 최대 1%를 사용할 수 있는 작품 값을 나눠 갖자고 했다.

김 씨는 "자연스럽게 리베이트가 형성되어 먹이사슬처럼 굳어져 있었다. 건축물 미술작품은 예술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사 발주처나 건설사 조합을 위한 것이더라. 아니면 예술과 관계없는 건축사가 개입해 중간 수수료를 떼가더라"고 했다.

사실 김 씨의 사례는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익히 알려진 폐단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로 20년 넘게 온 거리마다 놓인 작품은 예술가에게 창작 기회를 주어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시민이 예술 체험을 가까이서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어두운 면이 많다. 주위 경관과 동떨어지거나 예술품으로 간주하기에 부실한 작품, 탈법적으로 이뤄지는 계약, 건축주와 대행사의 짬짜미, 일부 작가들의 독점,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애물단지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이 모 씨는 "조금만 관심 있게 둘러보면 1% 미술품 가운데 신진 작가가 작업한 참신한 작품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여러 곳에 있거나 어디 협회나 단체에서 일하는 간부의 작업이 많다. 우리처럼 젊은 작가에게 건축물 미술작품이란 그들만의 리그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공미술포털(http://www.publicart.or.kr)에서 최근 5년간(2015년 1월부터 현재까지) 도내에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298개)을 찾아보면 작가가 중복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씨는 "아마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작가 쏠림은 더 많을 것이다. 이는 한 작가가 일정한 작품 수만 작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소수 작가가 독점해 비슷한 작품을 제품처럼 찍어내기에 문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경남도에 맞는 개선책 찾아야"

그렇다면 건축물 미술작품을 세우기 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걸러낼 수 없을까?

경남도는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를 열고 심의를 한다. 그런데 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많다.

먼저 경남도 문화관광체육국장 등 공무원 2명과 위촉위원 28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심사표를 기준으로 심의를 벌인다. 하지만 30명 가운데 10명 정도가 수십 건을 처리하고 있다. 또 위촉된 위원 대부분이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전문가 등이어서 작품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준 낮은 작품을 솎는 일이 중요하지만 이중계약서 등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경남도는 공모제 도입 등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나섰다. 도 관계자는 "특정 작가 쏠림, 리베이트 등 관행을 잘 안다. 하지만 행정기관이라 직접 수사할 수 없다. 또 '문화예술진흥법'에 벌칙 조항이 없어 별도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지난 1일부터 누리집에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다. 공정성을 기하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밝혔다.

도는 경기도와 서울, 세종시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조례를 바꾸면서까지 적극적이다. 그는 건축물 미술작품을 제품이라고 비판하며 건축물 미술작품 선정 과정에 공모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건축주가 선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공모제 도입과 미술작품 검수단, 작품의 사전정보 제공 등을 담은 계획안을 만들었다. 현재 입법 예고된 상태다.

서울과 세종시는 원하는 건축주에 한해 건축물 미술작품 공모를 대행해주고 있다.

정부도 비슷한 방식으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공개한 '미술로 행복한 삶-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에 따르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에 대해 국가기관은 미술 전문기관(미술은행 등)의 대행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용보험 부담금 지급 의무화로 예술인 고용보험 연계 △미술 창작 대가기준 적용, 중간 대행 수수료 최소화 등 유도 △심의과정 등 복잡한 행정절차의 간소화, 불명확한 규정의 명확화 △업체 중심에서 작가 중심으로 전환하여 작품 수준 향상 등도 해내겠다고 발표했다.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지방자치 차원에서 공공미술위원회·공공미술재단으로 관리·연구되길 바란다"고 전한 조각가 김 씨의 말처럼, 현재 20년 폐단에 대해 건축물과 예술을 분리해 꼼꼼하게 다루는 심의체와 위원회 구성, 조각에 한정된 작품을 벗어나 아파트 입주민 또는 지역 시민과 소통하는 열린 작품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사정에 맞는 대안을 찾는 것. 경남도가 이달까지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한 목소리를 수렴해 일상 공간을 예술로 물들이자는 취지를 잘 살리는 방향을 어떻게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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