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도지 폐지운동 주도로 관·언 유착 고리 끊다
시민과 함께 이슈 발굴, 부·권력 편중 문제 지적도

독자와 지역사회에 유의미한 경남도민일보의 역사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세 가지 뼈대를 갖고 정리한 약사(略史)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언론으로 어떻게 성장해왔나, 지역사회에는 어떤 역할을 해왔나? 끝으로 독자와 어떻게 교감했고, 어떤 평가를 받아왔나? 1999년 창간 전후부터 2018년까지 모두 10편으로 정리합니다.

나는 그 전단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초창기 경남도민일보의 기개를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신문을 태워 버립시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신문들은 모두 쓰레기다. 그러니 태워버려라. 우리가 진짜 신문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다"는 포효였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경남도민일보 2001~2002년 역사를 정리하면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문구가 있었다.

▲ 지난 2002년 9월 6일 마산 진전면에서 한국전쟁 당시 학살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태풍에 모습을 드러낸 건 50여년 전 200여 명의 보도연맹원 유골이었다. 여양리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1999년 본보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썩은 카르텔을 깨라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며 1999년 5월 11일 창간했던 경남도민일보. 신문의 주인과 신문사의 주인이 일치하는 도민주주 신문으로서 특정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한국 언론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01년 1월 2일 자 신년사에서 경남도민일보는 "작은 약속이 큰 사회를 만든다"는 한 해 구호를 내걸었다.

다시 1년 뒤 2002년 신년사는 그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냈다. "지방경제를 좀먹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지역토호들의 검은 비리를 파헤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금관언 유착구역에서 서성대는 언론이 아니라 개혁의 기치를 더욱 높이며 제목소리를 내는 신문이 될 것을 거듭 다짐하고자 한다." 그 대상이 권력이든 자본이든, 동종업계인 언론이든 제 할 말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내용과 성과를 압축한 글이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강렬했다. '썩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라!' 2002년 5월 11일 창간특집호에 실린 기사였다.

'(부제)지난 3년간 경남도민일보가 해온 실험들-김주완 기자' '△자사 보도에 대한 반성과 비판 = 경남도민일보는 전국 언론사상 유일하게 정관상의 조직으로 구성된 '지면평가위원회'의 평가보고서를 가감 없이 미디어면에 싣는다. 언론비평 고정란 '뉴스따라잡기'에서도 자사 보도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계속된다. △계도지 폐지운동 전국 확산 주도 = 본보는 도내 시·군의 2000년 예산편성 시점부터 군사독재 시절 도입된 관·언유착 유물인 계도지를 안 받기로 선언하고 폐지운동을 제기했다. 이에 동조한 시민단체들이 폐지운동에 가세하면서 마침내 2001년부터 경남에서 계도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성과를 낳았다. 연간 10억여 원의 혈세낭비를 지켜낸 것이다. △진보세력도 비판하는 '열린 진보' = 도민일보가 표방하는 '열린 진보'는 지역의 진보세력에 대해서도 과감히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보도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적지않은 시민사회단체가 도민일보의 '충고'를 받았다. …도민일보가 시도했던 실험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퍼블릭 저널리즘'의 실천이다. 신문사에서 일방적으로 해온 의제설정을 지역시민들과 함께 하고, 대안까지 찾아나서는 것. 언론-시민단체 공동 지방선거 프로젝트나 마금산온천 비리사건을 비롯,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 한국은행 터 시민공원만들기 운동, 3·15회관과 문화예술회관 통합건립 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편집권 독립 =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편집권 독립이다. 이를 위해 편집국장 추천제니 중간평가제니 직선제니 하는 제도가 생겼다.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아예 경영진을 사원들이 뽑는다. 사원주주회와 사외주주 자문위원회가 경영진을 추천한다. 이 밖에도 노조와 기자회, 회사발전위, 지면개혁위 등이 모두 편집권 독립을 위해 제 활동을 해 나간다.'

▲ 지난 2001년 3월 23일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본사를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주주참여 청약을 했다.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신문을 보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약한 자의 힘' 배경은

경남도민일보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사시 '약한 자의 힘'이다. 2004년 이 사시가 만들어지기 전에 지렛대 역할을 한 기사가 있다. 2001년 5월 11일 창간특집호 21~27면에 걸친 대형 기획 '20대80사회, 미래가 없다'였다. 김현식 기자가 썼던 문제제기는 이랬다.

'지난 7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과정이 낳은 부의 양극화 또는 빈부격차라는 용어는 일상화돼 왔다. 그러나 IMF 관리체제를 거치는 동안 '20 대 80 사회'라는 용어가 이를 대체했다. 사회구성원의 20%가 모든 생산과 소비를 독점하고 나머지 80%는 잉여인력이 된다는 말이다. 경남도의 98년 도민 생활수준 및 의식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이 90만 원 미만 가구가 28.3%, 200만 원 이상은 21.4%로 집계됐다. 99년과 2000년도 조사는 더욱 우울하다.'

이어 임용일 기자가 '정리해고된 50대 가장'을 만났다. '김 씨는 부인(45)과 사이에 대학 1년과 고교 1년에 재학 중인 두 딸과 초교 6년 아들을 둔, 한창 목돈 많이 들어갈 가장이다. 그러나 마땅한 벌이가 없어 아파트 담보로 은행서 대출받은 돈과 퇴직금(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았다)으로 월 300만 원 넘는 학비와 생활비를 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가 제시한 해법은 '지방화'였다. 정봉화 기자는 이렇게 썼다. '△대기업 본사를 경남으로 옮기자 = 두산중공업은 우리나라에서 지방에 본사를 둔 몇 안되는 대기업 중 하나다. 두산중공업의 본사는 창원에 있다. 대기업 본사가 지방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법인세와 종합토지세, 건물재산세 등 각종 지방세가 해당 지자체에 귀속된다. △인재를 지방에 머물게 하자 = 지방화를 위한 또 하나의 해법은 사람이다. 지방기업들은 돈과 정보만큼이나 인력확보에도 애를 먹고 있다.'

관련 보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6월 6일 자 '마산 대내동 사람들 르포' 편부터 후속 기획이 시작됐고, 8월 3일 자에 14편 '나누는 삶 실천하는 인애복지재단 이사장'까지 이어졌다. 이후 경남도민일보는 2004년 4월 21일 경영혁신위원회를 통해 노사 공동으로 사시를 '약한 자의 힘'으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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