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게 뱉는다는 뜻의 '바튼소리'독보적인 것처럼
<경남도민일보>만의 특별함으로 세상의 소금 되길

'앞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소설가 박경리가 <토지> 1부 서문에 썼던 물음은, 스무 살 먹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유효한 울림이다. 앞으로의 20년, 도전으로 비약하고자 한다면 경남도민일보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해답은 가까이 있었다. 촌철살인의 글로 비판의 대상을 매일 잘근잘근 씹는 '바튼소리' 전의홍(79) 선생에게 묻고, 또한 답을 들었다. 경남도민일보와 20년 가까이 함께 걸었던 그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당당한 비주류"가 되라고 당부했다.

본보 2000년 7월 5일 자에 처음 '바튼소리'가 실렸다. 그때도 바튼소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는 독자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도 한 차례 설명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전 선생으로부터 그 의미를 되새겼다.

"'바튼소리'는 경남도민일보 윤석년 논설고문(창간 당시 편집국장)의 숙고 끝 작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기침이나 말 따위를 거세게 막하다는 뜻의 말 '뱉다'의 방언인 '바트다'가 '바튼'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시국과 세태에 대한 촌철살인적 말의 진액을 거세다 싶게 '올곧게 뱉는다'는 정신 대변적 뜻을 지닌 게 바로 '바튼소리'입니다. 글의 끝을 맵찬 풍자성 시조 한 수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비판 의식을 잃은 오늘날 시조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며 시조시인회가 수여한 감사패를 사양 끝에 받긴 했지만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바튼소리'의 역할?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한국 신문의 칼럼 형식 즉 '각기 다른 신문이지만 닮은 칼럼' 그 '붕어빵 틀'을 깬 '창조적 삐딱이' 정신으로 시시비비 '붓 칼' 들기, 그리고 우리 신문의 사시인 '약한 자의 힘'에 힘 실어주기라고 말입니다."

전 선생의 날카로운 글은 8할이 생전 어머님 대쪽 가르침 영향이다. 그는 새파랗게 살다가 새파랗게 죽기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팔순을 앞둔 전 선생은 여전히 새파란 청년처럼 글을 쓴다.

"본보 자매지 〈피플파워〉(2013년 2월호) 인터뷰 인용 좀 하겠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겉보기로의 '콩밭 매는 아낙네'와, 속에다가는 귀동냥한(서당) 공맹(孔孟) 가르침과 서릿발 기품, 기발한 통찰력(귀신 같은), 남자 어른들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고 꼿꼿하기로 소문난 분이라는 두 모습의 '대쪽 여걸'(?)이었습니다. 야당 정치 지도자 박순천 여사의 열(熱) 팬이기도 했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아들네 신문사의 사시인 '약한 자의 힘'에 열광하셨을 것입니다. 이 아들을 '바튼소리' 집필자로 크게 한 원동력인 어머니의 단호히 엄했던 훈계를 곁들입니다. "사람은, 특히 사내는 새파란 가슴으로 살다가 새파랗게 죽을 줄 알아야 한다." '바튼소리'와 함께 '청생청사(靑生靑死)' 하리라는, 그렇게 삶도 마감하리라는 다짐이야말로 낙(樂) 중의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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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1월 10일 창원시 진해구 자택에서 본보 자매지 <피플파워>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전의홍 칼럼니스트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일본 신문 〈아사히〉에 '바튼소리'와 유사한 성격의 칼럼 '천성인어(天聲人語)'가 있었다. 전 선생은 본보 2005년 4월 12일 자에서 왜곡 역사 교과서 편을 든 〈산케이신문〉 콧대를 사정없이 누른 '천성인어'를 업어주고 싶다고 했다. 남다른 '천성인어' 애착, 까닭이 있을까.

"'하늘의 소리, 사람의 이야기' 그 엄숙한 의미의 '천성인어'야말로 지구촌 명 칼럼으로 연륜이 쌓인 지 오래입니다. 제명(題名)의 함의만 보아도 명불허전임이 여실히 증명될 만큼, 옷깃이 여며질 만큼 '두렵다'는 생각부터 들게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익힌 〈명심보감〉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사어(人間私語) 천문약뢰(天聞若雷) 암실기심(暗室虧心) 신목여전(神目如電)' 즉 '사람이 몰래 하는 말도 하늘은 우렛소리와 같이 또렷이 듣고,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속이는 짓도 신은 번갯불처럼 환히 본다.' 이쯤 설명으로도 '천성인어'의 정론직필적 양심과 시시비비 정신을 읽어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늘의 소리'를 두려워하며 '사람의 이야기'를 대쪽같이 엮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야말로 '천성인어' 정신의 실천적 전범(典範) 신문이라 자부하고 싶습니다. 덧붙입니다. 본보의 '촌지 거부' 그 거사(巨事) 일례만 보더라도 특히 우리 신문 '대들보 기자 김주완'이 어떻게 '하늘을 두려워하며 사람 이야기' 엮기에 진력하며 경남도민일보를 반석 위에 세워 놓았는가를 아는 이는 알 것입니다. 그 반석 위에 '바튼소리'도 바늘에 실 가듯 서 있을 따름입니다."

필화(筆禍). 글로 집권 세력을 비판하거나 풍자했다며 불이익을 주던 그것. '바튼소리' 또한 필화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 선생은 특히 어떤 필화가 뇌리에 경경(耿耿)한지 전했다.

"필화? 참 많이도 겪었죠. 요즘과 달리 처음엔 불만 제기 측이 본사에 물어 알아낸 저의 집 전화로 밤낮없이 며칠씩 온갖 저주와 욕을 기총소사하듯 퍼부어댄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집사람이 심장병까지 나서 희한한 '피난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담당 데스크, 편집국장, 사장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하여 맘고생을 시킨 걸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해집니다. 특히 가소롭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던 권철현 전 산청군수의 '법적 조치' 운운한 으름장 놓기가 본사의 '특정인 압박에 공식적으로 대응할 것' 통보 한 방을 맞고 꼬리를 내린 일은 아직도 가끔 우스워질 때가 있습니다. 최근의 필화로는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트집을 잡은 '바튼소리' 글 '류여해가 들먹인 '하늘 경고''에 발끈한 명예훼손(모독) 제소 사건이 있습니다. 제 덫에 제가 치여 제 스스로 꼬리 내리기(고소 취하)를 했지만,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한 괘씸한 뒷맛은 아직도 소태맛입니다."

전 선생의 글은 600자 전용 원고지에 연필로 한 번, 볼펜으로 다시 한 번 쓰여 팩스로 전달된다. 늘 육필로 원고를 작성하는 의미를 물었다.

"〈칼의 노래〉 작가 김훈처럼 저도 연필로 초고 작성을 하되 정서는 볼펜으로 합니다. 김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힘을 주고 꾹꾹 눌러 쓴다. 내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간다는 육체감이 좋다." 저의 어록 소개도 하지요. "전의홍은 신문 자료 스크랩들이 만들어주는 '지진(紙塵)'을 사랑한다. 컴퓨터에서 이런 행복한 '아날로그 먼지'가 날 수 있나?" 문득 절창 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너희들이 내버린 세상 내가 가지마.'"

전 선생은 건강이 퍽 좋지 않다. 온갖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글 건강은 늘 한결같다. 비결이 무얼까.

"유머부터 앞세우겠습니다. 저는 '물뽕'과는 거리가 먼 '글뽕'이라는 '바튼소리 제약'의 '몰두 망통환(忘痛丸)'을 근 20년 동안 장복했습니다. 일단 집필 삼매경에 들면 반쪽만 남은 폐의 폐섬유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원인 불명의 악성 현기증, 목·어깨·허리 통증, 우울증, 다리 절룩거림 고통 따위를 순간, 순간 싹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지에 듭니다. 혹시 '바튼소리' 장수의(?) 호조(好兆)일지도 알 수야 없는 일이지요. '쭈그렁 밤송이 삼 년 간다'는 기도문이라도 꾸준히 열심히 외어 볼까 합니다."

전국 신문에서 유일무이한, 본보만의 개성을 꼽으라면 단연 '바튼소리'다. 집필자인 전 선생은 서울지(紙) 대 지역신문 견줌에 대한 견해나 소회가 남다르다.

"우선 2003년 12월, 본보 지면평가위원회가 '이달의 좋은 기사'로 '바튼소리'를 선정하며 담뿍 안겨준 격려 평가에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내용을 되짚습니다.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로 시원하게 사회 현상을 풀어준다. 부당한 권력에 당당하고 사회적 약자를 다독거린다. 절제된 표현과 독특한 글 전개는 다른 신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경남도민일보만의 것이다." 그 내용 중 "다른 신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경남도민일보만의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저는 울컥 벅찬 감동을 받았고, 순간 "아, 그거다, 그거! 유레카!" 외쳤습니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지역신문에는 늘 '뭐 볼 게 있어야지'라는 멸시가 '주홍글씨'처럼 끈끈히 붙어 있습니다. 그 억울을 풀어줄 수 있겠다 자신이 들게 해준 것이 '경남도민일보만의 것 - '바튼소리'' 바로 그거였습니다. '중앙'이 아닌 '비주류'에겐 '벌레 하다'라는 꿈틀거림이 필요합니다. 장석주 시인의 글 〈비주류 본능〉 속 몇 대목을 따 옮깁니다. 이것을 우리 신문 후배들에게 주는 격려와 당부의 선물로 삼고자 합니다. '비주류는 혁명의 동력이 나오는 근원이다. 비주류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다. 비주류 본능은 내 힘, 내 경쟁력이다. 나는 당당한 비주류다.'"

한창 글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전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장 중요한 말을 빠트렸다며, 꼭 더해주길 요청했다. 그것은 독자를 향한 고마움이었다.

"끝으로 애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흠도 많았을 제 글 '바튼소리'의 미흡함까지 헤아려 읽어주시고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해주신 은혜의 짐 무겁게 지고 있습니다. 깊이 새겨 잘 간직하며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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