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수도 푸른 물결 검은 음표 수놓았네
현대 기법에 한국 정서 녹여 내, 순수-실용음악 넘나들며 활동

정윤주 유족은 작년 정윤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사비로 그의 작품집을 올해 초 펴냈다. 무용조곡 '까치의 죽음' 관현악총보다. 그의 자녀는 평생을 작곡가로 살아온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작품을 정리했고 작품집 300여 권을 국립대학도서관 등에 기증했다.

아버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업적을 그대로 묻히게 할 수 없다는 의지였다. 정윤주는 순수음악과 실용음악을 넘나들며 한국적 정서에 현대적 작곡 기법을 더하려고 노력했다.

음악학자 오희숙은 정윤주에 대해 한국과 서양,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고 평하며 "윤이상이 서양의 악기를 사용해 동양적 음색을 내는 데 주력했다면 정윤주는 한국의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음색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기법의 만남 = 무용조곡 '까치의 죽음'은 정윤주의 대표작이다. 1957년 한국음악가협회 제1회 작곡상을 받았고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곡은 극작가 유치진이 쓴 희극을 토대로 작곡됐다. 1952년 전주곡을 작곡했으며 이듬해 전곡을 완성했다. 독창·중창·합창 등이 삽입된 무용모음곡이다. 지난 1963년 KBS교향악단과 합창단에 의해 초연됐다. 음악칼럼니스트 조성우는 이 곡에 대해 "음악적 측면을 보면 수많은 서양 작곡가들의 영향이 엿보인다"며 "물론 단순히 서양 작곡가들의 기법을 흉내내기만 한 것은 아니며 민속적인 음계와 리듬의 활용을 통해 한국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했다"고 평했다.

정윤주는 현대적 기법을 구사했던 작곡가지만 한국적 정서를 음악에 녹여내고자 했다.

관현악곡 '염천'은 해방 이후 민생을, '교향곡 1번'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고 현악과 타악을 위한 '향로'에는 한국의 전통적 사상을 담기도 했다. 또한 영화 음악에 한국 악기를 사용했고 서양 오케스트라와 가야금을 접목하는 시도를 꾀했다. 정윤주는 회고했다. "사극에는 으레 고전음악을 사용했지만 이 기회에 있어서 전통음악을 배제하고 시대감각적으로 우리의 고유악기만을 사용해 그야말로 전위적으로 시도케 됐다."

▲ 작곡가 정윤주가 1995년 통영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유족

◇그의 예술혼 후대에도 계속 = '창작음악의 활화산'은 정윤주의 수식어다. 지난 2008년 통영예술제에서 그를 조명하는 음악회 '창작음악의 활화산-정윤주'가 열렸고 경남쳄버쏘사이어티는 그의 작품을 연주했다. 이후에도 경남쳄버쏘사이어티와 정윤주의 인연은 계속됐다. 경남쳄버쏘사이어티는 그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했고 지난해 정윤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했다.

경남쳄버쏘사이어티 음악감독인 차문호 경남대 교수는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용민 예술기획본부장이 11년 전 통영 출신 작곡가 정윤주를 조명하는 연주회를 제안했고 그의 아들 정대은 씨를 만나게 해줬다"며 "정윤주 작품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친숙한 곡을 썼고 윤이상 못지않게 당대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경남쳄버쏘사이어티는 오는 14일 오후 7시 30분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정기연주회에서 정윤주 곡을 연주한다. 실내악곡 현악과 타악을 위한 '향로'(1970), 관현악곡 '초가을의 스케치'(1953), 무용조곡 '까치의 죽음'(1953) 등이다.

정윤주는 '초가을의 스케치'란 곡에 대해 "집 근처 용지공원에서 매일 이른 새벽에 붕어 낚시질을 하곤 했고 또한 출근길은 주위사방의 황금빛 들판과 논들, 쭉 뻗은 신작로, 옆에는 기찻길 등 한국의 초가을 향수어린 아름다운 전원풍경으로 펼쳐져 있어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윤 시인은 정윤주를 기리며 최근 '한려수도 물결 위 음표를 수놓을 때' 시를 썼다. 김 시인은 "창작만이 자신의 운명이라며 음악에 매진했던 분"이라며 "영화음악의 선구자로서 큰 역할을 했는 데도 조명을 받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끝> /김민지 기자 kmj@idomin.com

※참고문헌 = <음악과 민족> 중 '한국음악 20세기; 정윤주'(2003), 오희숙, 민족음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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