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에 굳이 꺼낼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엄마와 잘 맞지 않는다.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인정할 뿐이다.

오랜 경험상 설득한다고 바뀌는 엄마도 아니고, 서운하다고 사과하는 엄마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그녀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걸 터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종 울컥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어버이날을 맞아 함께 소고기를 먹자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소고기는 먹되, 나와는 먹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용돈을 부쳐주면 친구들과 함께 소고기를 먹겠다는 거였다.

나의 효심을 창의적으로 재해석,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식보다 친구가 더 좋은 걸까?' 서운함에 울컥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의 뜻대로 나는 용돈을 보내고, 엄마는 그 돈으로 친구들과 행복한 점심을 드셨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엄마에게 용돈 이외의 선물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딱 한 번 있다.

10여 년 전쯤, 생신 선물로 백화점에서 스카프를 사 간 적이 있다. 값비싼 선물이기에 엄마가 기뻐하며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실 거라고 예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마음만 받을 테니 앞으로는 돈으로 주라고 하셨다. 엄마의 취향을 저격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딸내미가 사준 거니까 하고 다니겠지? 전혀 아니었다. 엄마의 눈에 들지 못한 스카프는 천대받았다. 엄마의 목이 아닌 짐 싸는 보자기로 몇 번 그 역할을 다한 뒤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엄마에게 효도는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이다. 주는 자식이 아니라 받는 부모의 마음이 흡족해야 비로소 진정한 효도가 된다고 주장한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다른 모성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딸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품이 넓은 어머니, 자식을 제 눈에 넣고도 아픔을 느끼지 않을 어머니,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가장 행복해할 것 같은 어머니, 전형적인 한국형 모성과 우리 엄마의 모성은 달랐다.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 자식에게 희생하지 않는다. 도리어 엄마이기에 자식보다 먼저 챙김을 받아야 마땅함을 가르쳤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엄마가 먼저 맛보는 게 당연했다. 옷을 사더라도 자식보다 당신의 옷을 먼저 샀다. 지금도 전 재산을 마지막까지 당신을 위해 쓰다 저 세상으로 갈 거라는 엄마. 누구보다 당신의 인생을 먼저 생각하는 여성이 우리 엄마다.

'엄마가 왜 저래?' 한때는 엄마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는 자식보다 덜 먹고 덜 입고 더 희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라서 뭐?'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엄마의 모성이 더 편하다.

당신 건강을 아낌없이 챙겨 온 엄마라서 81살의 연세에도 건강하다. 병원 갈 일이 별로 없으니 내가 편하다. 자식보다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엄마라서 외롭지 않다. 눈이 빠지게 자식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하지 않았던 엄마이기에 자식에게 또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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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생 따로, 자식 인생 따로…. 독립적인 관계 맺기를 요구하는 엄마의 라이프 스타일은 시간이 갈수록 빛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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