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먹고 선물 사주고…의회 '쌈짓돈' 관행 여전
본보, 내역 정보공개청구
식비·다과비 지출 대부분 교육·정책토론회 2% 불과
편의따라 만찬·물품 구매 기준도 불명확해 천태만상
의회 운영 폐쇄적·불투명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구성한 경남지역 시·군의회는 '변화'에 대한 유권자 열망을 담아 출범했다. 변화에 대한 기대만큼 투명하지 못한 의회 운영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특히 지난해 경북 예천군의회 국외연수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폐쇄적인 의회 운영을 극복하고 새로운 의회상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불투명한 의회 운영 대명사처럼 여겨온 업무추진비 관행은 여전하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방선거 이후 지난해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경남도의회와 18개 시·군의회 의정운영공통경비 사용 내역을 정보공개청구해 분석한 결과 '밥 먹는 의회'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식비·다과비 지출 80% 넘어 = 지자체 예산편성 기준에 따르면 의정운영공통경비는 의회 또는 위원회가 공적인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공통경비로 공청회·세미나·회의·행사·교육 등에 사용한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 분석 결과, 식비와 다과비로 사용한 게 대부분이다. 이 기간 도의회는 의정운영공통경비로 900건 2억 7446만 2652원을 사용했다. 이 가운데 식비와 다과비로 지출한 것은 739건 2억 2973만 6126원으로 83%를 차지했다. 반면, 교육과 정책토론회 등에 사용한 공통경비는 7건 566만 3800원으로 2%에 불과하다.

다른 시·군의회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정보공개청구 내용만으로 정확한 목적을 파악하기 어려운 의정활동 또는 간담회 명목으로 의원간 식비를 공통경비에서 지출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매달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받으면서도 '쌈짓돈'처럼 공통경비를 사용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도의회는 시·군의회와 달리 공통경비를 교섭단체 활동비로도 사용하고 있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1435만 6280원을 썼고 대부분 식비다. 교섭단체 대표실 사무용품·생수 구입비와 냉온수기 소독도 공통경비에서 썼다.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 현수막 제작비를 쓰기도 했다.

도의회는 '교섭단체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지만 예산 지원 근거는 마련해놓지 않았다. 따라서, 별도 예산 편성 없이 공통경비를 활동비로 사용하고 있다. 넓게 보면 의정활동에 속하는 정당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비교섭단체 정당이나 무소속과 형평성 문제가 남는다. 또한 의정활동과 무관한 개별 정당활동을 구분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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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기준에 악용 사례 많아 = 의정운영공통경비는 예산 내용을 확정하지 않고 정해진 범위에서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포괄사업비로 애매한 기준이 늘 문제가 됐다. '공적인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라는 포괄적인 규정 탓에 의회마다 지출 기준도 제각각이다.

문제는 이런 포괄적인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다.

함안군의회는 5차례에 걸쳐 꽃과 케이크 등 의원 생일 축하선물 구입비로 68만 원을 썼다. 거창군의회는 거창사과마라톤대회 의원 참가비 13만 5000원을 공통경비에서 사용하고, 관계기관과 언론인에게 추석 명절 선물용으로 나눠줄 지역특산품을 160만 원에 구입했다.

밀양시의회는 의원과 간부공무원 축구경기에 필요한 유니폼과 보호대 등을 구입하고, 현수막을 제작하는 데 103만 원을 쓰고, 경기 후 만찬으로 150만 원을 지출했다. 이에 대해 밀양시의회는 개원 후 집행부와 친선을 다지고 앞으로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의정활동의 하나라고 해명했다.

양산시의회는 '지역문화발전 공로 의원 격려품'으로 의원 개인이 운영하는 미술전시관 행사에 공통경비로 떡집에서 6만 7000원을 썼다. 창원시의회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금 200만 원을 쓰기도 했다. 거제시의회와 의령군의회는 의원 재직기념패 제작에 각각 320만 원·154만 원을 사용했고, 사천시의회는 전직 의원과 간담회에서 나눠줄 지역특산품을 67만 5000원에 구매했다.

포괄사업비가 아닌 운영비와 같이 항목이 분명한 예산으로 편성해 사용해야 할 부분도 눈에 띄었다.

밀양시의회는 매달 의원실에 제공하는 생수를, 하동군의회는 의원실 전산 소모품을 구입하고 있다. 대부분 의회에서 지방선거 후 새롭게 구성한 의회 개원에 필요한 명패·명함·신분증 제작 등 개원행사 준비 경비 등을 공통경비로 사용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업을 별도 예산으로 편성하지 않고 관행 또는 편의에 따라 포괄사업비에서 처리한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의회마다 방문객 기념품을 공통경비로 사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계획에 따라 기념품 구매가 이뤄지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규모가 달라지고 있다. 다른 의회는 한두 차례 500만∼600만 원 규모로 기념품을 구입한 것과 달리 진주시의회는 같은 기간 9차례에 걸쳐 2408만 원을 사용했다. 개원 이후 방문객이 많았고 지역특산품 판매 활성화 차원에서 기념품 구매가 이뤄졌다는 것이 진주시의회 설명이다.

거제시의회는 공무국외여비에서 처리해야 할 통역가이드비 63만 원을 공통경비로 지출하고, 창녕군의회는 초선의원 5명에게 제공한 의정활동업무용 가방 구입에 98만 1700원을 썼다. 모두 '관행' 또는 '폭넓은 의정활동'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공통경비를 사용한 사례다.

베일에 가린 공통경비…업무추진비 성격에 규모 크지만 사용처 꽁꽁 싸매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 성격인 의회비는 총액한도제로 자치단체 예산 규모,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정한다. 의회비에는 의원 급여에 해당하는 의정활동비·월정수당이 있고, 국내외 여비가 포함돼 있다. 특히 업무추진비 성격으로 의정운영공통경비와 의회운영업무추진비가 있다. 의회운영업무추진비는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등에게 지급하는 업무추진비로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가 사용처와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펼쳐왔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업무추진비 성격인 '의정운영공통경비'는 의회운영업무추진비보다 주목을 덜 받았지만 규모는 훨씬 크다. 현재 의회운영업무추진비를 공개하는 경남도, 창원, 통영, 김해, 양산, 거제, 창녕, 남해, 거창 등에서도 공통경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이 가운데 창녕과 거창은 업무추진비 공개 규칙에 공통경비를 포함해놓고도 시행하지 않고, 나머지 의회는 아예 공개대상에 빠져 있다.

의장단에 포함되지 않은 '일반 의원의 업무추진비'로 불리는 공통경비는 그만큼 민감한 부분이다. 지난 3월 양산시의회는 '업무추진비 공개 규칙안'을 심의하면서 애초 의회운영업무추진비와 함께 공통경비를 공개하는 조항을 마련했지만 수정의결했다. 정회 후 비공개로 진행한 심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공통경비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정의당 진주시위원회가 공통경비를 포함한 업무추진비 집행·공개 표준 조례안을 진주시의회에 제안하고, 3월에는 경남도 감사를 촉구하는 등 투명한 의회 운영 요구가 커지자 공개를 검토하고 있지만 공통경비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

행정사무감사와 예산 심의에서 집행부 씀씀이를 하나하나 따지며 시비를 가리는 의회가 정작 스스로 한없이 관대한 이중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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