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다모여 밥 먹는 일 손에 꼽는 요즘
말·웃음도 비벼지던 둥근 밥상 생각나

아내는 새벽 출근하는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학교 다니는 아이를 깨웁니다. 준비물을 챙기고 잠도 덜 깬 입에 몇 술 떠먹여 보냅니다. 늦게 나가는 또 다른 식구의 밥상까지 차리고 나서야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싱크대 앞에 서서 선밥을 먹고 설거지를 합니다.

저녁이라 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자율학습에 학원까지 쫓아다니느라 끼니를 거르거나 밤참 같은 늦은 저녁이 일쑤입니다. 남편도 약속이 있거나 잔업 근무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합니다. 이러다 보니 한 해가 가도록 다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한 지붕 아래서 함께 밥상을 받는 사람들을 식구라 하지요. 하지만 밥상머리에 마주 앉을 일이 드문 요즘에는 그 식구라는 말이 참 무색합니다.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에 말을 섞어 비비고 나눌 일이 없으니 아이는 세대 차이를 말하며 부모 말을 귓등으로 흘립니다. 형제간 우애는 사라지고 부부간 금슬이 깨집니다. 혼자 먹는 밥을 일컫는 듣도 보도 못했던 혼밥이 일상용어처럼 어색하지 않게 들릴 만큼 밥상 문화가 달라졌습니다. 한집안 식구가 적게는 예닐곱, 많게는 여남은씩이던 시절에도 한 끼를 두 번 세 번 차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형이 땔나무 핑계로 지게 싸움이나 장치기 놀이에 해를 넘기고 이웃 마을 길흉사에 다니러 가신 아버지가 정수리에 취한 달을 이고 오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다 갈고 올지 모르는 머슴까지도 사립에 들어서지 않으면 밥상을 차리지 않았지요. 밭일과 길쌈에 집안일까지 하느라 바쁜 어머니가 두 번 세 번 차릴 짬도 없었지만, 그보다 한 밥상에 한 솥밥 함께 먹는 것을 식구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봄과 가을걷이가 고만고만한 집에서는 도래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독상은 집안 어른이나 소작 마지기나 내어주고 사는 집이나 찌그러진 갓이나마 벽에 걸린 집에서나 받을 수 있었지요.

도래상은 이어 붙인 널빤지를 둥글게 만들어 다리를 두 짝씩 이어 접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보관하기도 좋지만 좁은 초가집 방문으로 들이기가 수월하거든요. 상을 먼저 방에 들이고 밥과 반찬을 차려 비좁더라도 무릎을 세우고 맞대고 먹었습니다. 지금의 네모난 식탁은 모서리 쪽이나 길이 쪽으로 앉은 사람에게는 멀리 있는 반찬에 손이 닿지 않아 앞앞이 따로 찬을 두지만 둥근 도래상은 누구에게나 고루 손이 닿았습니다.

아버지 농협 이잣돈 걱정에 돼지 새끼 젖떼기가 좀 이르더라도 장에 내보자는 어머니의 궁리가 나옵니다. 형이 수학 여행비를 들먹이자 절미 저축한 돈을 헐어보겠다 합니다. 숟가락 젓가락이 부딪치며 말을 비비고 웃음소리가 콩자반과 함께 구릅니다. 같이 먹더라도 제 앞 접시에만 손이 가거나 제 수저하고만 먹는 요즘 식탁에서는 사라진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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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순도순 먹다가 코흘리개 철부지 형제 한 녀석이 반찬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냥 말 투정 정도면 밥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먹게 했을 텐데 다른 형제들이 모두 맛있다는 찬을 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굳이 물리라고 떼를 씁니다. 급기야 찬그릇을 내동댕이치며 밥상까지 엎을 기세로 강짜를 부리기까지 하면 참다못한 어머니는 밥그릇을 뺏고 밖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철부지에게 한 끼 굶는 배고픔보다 잠시나마 한 식구가 되지 못한 설움을 더 크게 주었던 거지요. 아이는 식구에게서 쫓겨나는 호된 벌을 받으며 철이 들어갔지요. 유난스럽게 시끄러운 불통 5월에 그 시절 도래상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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